신성대학교 노조 박인기 지부장
“나와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만 돌아도 불려 들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당진신문=최효진 기자]

신성대 노조 사무실은 지난 15년간 컨테이너 박스였다. 정문 옆 주차장 귀퉁이에 자리 잡은 컨테이너 박스를 본부 삼아 처음으로 서른 명이 채 되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모였다. 그 때가 2003년 6월이다.

신성대 노조에서 15년간 사무실로 사용한 컨테이너.
신성대 노조에서 15년간 사무실로 사용한 컨테이너.

신자유주의는 이미 일반 기업에 안착한 상태였고, 그 위세는 대학에도 밀물처럼 들어왔다.  연봉제 도입을 막아보자는 것이 표면적인 노조 결성과 교섭의 시작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사람 대접도 못 받는다고 느끼는 직원들의 자존감을 건 싸움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파업까지 간 투쟁에서 노조 사무국장은 구속됐다. 해고자들도 발생했다. 조합원들 역시 하나 둘 떠나갔다. 누가 봐도 진 싸움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활동하는 조합원이 단 두 명뿐인 시간은 10년 가까이 계속됐다.

그리고 2018년 10월 1일 전국대학노조 대전충청지역본부 신성대지부가 사무실 개소식을 개최했다. 대학 건물에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했고, 조합원은 약 서른 명에 다가서게 됐다. 물론 모두가 공개적으로 조합 활동을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인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큰 변화를 맞이한 것은 분명했다.

10월 1일 전국 대학노조 대전충청지역본부 신성대지부가 15년만에 마련된 사무실 개소식을 개최한 가운데 당진시립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10월 1일 전국 대학노조 대전충청지역본부 신성대지부가 15년만에 마련된 사무실 개소식을 개최한 가운데 당진시립합창단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학교 교직원식당에서 열린 개소식에는 대학노조원부터 시작해 금속노조, 플랜트노조, 지역노조 조합원까지 약 300여명이 모였다. 신성대노조의 긴 싸움을 지켜봤고 또 서로 도왔던 동지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15년이라는 긴 시간 신성대 노조를 지킨 두 사람 중 하나인 대학노조 신성대지부 박인기 지부장을 개소식을 마친 사흘 후인 4일 다시 만났다.

박 지부장은 “사실 그 동안 일반 직원들은 노조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 분위기가 그랬다. 예전에는 나와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만 돌아도 불려 들어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노조와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성대 박인기 노조 지부장.
신성대 박인기 노조 지부장.

박 지부장은 “그런 분위기가 올해 초 서서히 바뀌었다. 대학과 관련된 좋지 않은 소식들이 들리더니 학내 문제가 지상파 뉴스와 지역 언론에 올랐다. 얼마 후 교수협의회도 결성됐다. 여기에 노조에서 다섯 차례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역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대학 측 역시 노조와의 교섭에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이들은 설립자의 사망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분위기는 올 초부터 있었다”라고 말했다.

신성대가 언론에 오르내린 후 교육부는 특별회계감사에 들어갔다. 현재 신성대는 교육부의 감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대학 측에서는 학내 건물에 노조 사무실을 내주었다. 15년 만에 제대로 된 노조사무실을 갖게 된 것이다.

박 지부장은 “신성대 내에는 근무하기 열악한 여러 조건들이 있다. 신성대에서 퇴직하는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만 비추어 봐도 상황은 심각하다. 이래서는 대학이 발전할 수 없다. 지난 세월 노조가 대학의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역시 큰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긴 세월 힘들게 지켜 낸 노조 깃발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에 대해 박 지부장은 “우선 학내 직원들의 심각한 저임금 구조를 해소하고 고용의 안정을 이루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올바른 학교 운영을 위해 더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지역 대표사학으로 신성대학교가 올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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