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신문 아름숲기자단] 창경궁, 아픈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궁궐
[당진신문 아름숲기자단] 창경궁, 아픈 역사를 간직한 우리의 궁궐
  • 아름숲 기자단
  • 승인 2018.09.12 14:27
  • 호수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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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빈 기자(계성초5) msb7596@naver.com
민세빈 기자(계성초5) msb7596@naver.com

사람들은 아름다운 창경궁을 보며 웃고 행복해 한다. 가을이 되면 단풍 구경하기에도 좋고 야간에는 아름다운 조명으로 멋있는 풍경을 선물한다. 하지만 창경궁이 겪어온 아픈 역사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창경궁은 성종이 대비들을 모시려고 만든 곳이었다. 몇 차례 화재로 불탔지만 광해군 때 다시 복원 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1911년부터 해방이 되고도 한참 뒤인 1983년까지 아예 ‘궁’ 대신 ‘원園’으로 불렸던 창경궁.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이자 궁내부 차관이던 코미야 미호마츠의 제의로 이곳에 동물원과 식물원, 박물관이 들어섰다. 순종이 창덕궁에 있을 때 거의 한 궁처럼 여겨지던 창경궁이 사람들이 꽃놀이를 오고 동물을 구경하러 들르는 공원으로 뒤바뀐 것이다. 우리 왕실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지만 사람들은 금방 깨닫지 못했다.

코끼리나 홍학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이 많았던 창경원의 동물원. 전쟁이 끝날 때 쯤 일제는 모든 동물에게 독약을 먹이고 흔적을 지워버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해방 이후 같은 자리에 다시 동물원을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유리 대온실을 중심으로 한 식물원은 아시아 최초의 근대식 식물원이라고 추켜세웠다.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 자리에는 1911년부터 1992년 철거될 때까지 박물관으로 이용된 일본식 건물이 서있었다. 자경전은 복원되지 않고 있고 빈 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사진이 잘 나와서, 산책하기 좋아서, 볼거리가 있어서 사람들은 여전히 창경궁을 찾아온다. 하지만 이곳은 곳곳에 일제가 남기고간 상처들이 남아있다. 창경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일제가 심어놓았던 벚나무를 베지 않고 옮겨 심었다. 그 벚나무들이 지금의 여의도 벚꽃 축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벚꽃은 “선왕을 위해 죽”으라는 사무라이 정신이 담겨있다. 우리는 그런 일본의 국화를 아름답다 칭송하며 봄마다 축제를 즐기고 있다.

창경궁이라는 조선의 궁궐에 고려의 석탑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그 안에는 더 비극적인 역사가 담겨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문화재환수 디베이트를 준비하며
엄쌤 이선우(제 3회 문화재환수 디베이트 대회 고등부 심판)

국외로 불법 반출되거나 국내에 있지만 제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문화재 문제와 관련한 청소년 디베이트 대회가 열린다. 불법 반출 문화재의 환수와 국외역사유적지 보전사업을 진행하는 단체인 문화재환수국제연대가 여는 대회로, 올해 세 번째를 맞고 있다.

이번 대회는 초등생의 경우는 ‘창경궁 고려오층석탑을 사찰로 옮겨야 한다.’, 중학생은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을 국가 주도로 환수해야 한다.’, 고등학생은 ‘문화재는 민족주의(cultural nationalism)가 국제주의(cultural internationalism)보다 우선이다.’라는 주제로 찬반 디베이트를 진행하게 된다.

주어진 이슈에 대한 한 편의 입장을 옹호하고 그 반대 입장의 허점을 지적하는 퍼블릭 포럼 디베이트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각 팀별로 준비한 논리를 펼치고 상태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등 날카로운 공방을 펼칠 수 있다. 

자체적으로 디베이트를 해온 아름숲 기자단도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1회부터 어떤 주제들이 다뤄졌는지 살펴보게 되었고 그 중 가까이 있는 서산의 부석사를 직접 찾아갔다가 우연히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는 귀한 시간을 얻기도 했다. 올해 초등 주제로 주어진 창경궁 고려오층석탑을 직접 확인하고 살펴보기 위해 서울 창경궁에도 다녀왔다. 다양한 시각으로 토론 자료를 준비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생각도, 시각도 넓어졌으리라 생각된다.

문화재환수국제연대 이상근 상임대표의 말처럼 미래세대의 주역인 학생들이 이번 대회를 참여함으로써 향후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배우고 불법 반출문화재의 회복과 귀향의 이야기에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상이 돌아오기를

이다은 기자(계성초5) blessme0508@naver.com
이다은 기자(계성초5) blessme0508@naver.com

2012년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하 금동관음상)이 밀반입의 형태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1330년에 만들어진 이 불상은 왜구에 의해 쓰시마 섬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동관음상은 우리나라에 보관중이며 일본은 이 불상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서니 깊은 역사가 느껴지는 아담한 부석사가 보였다. 이 절은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설화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금동관음상은 사찰 부근 마을사람들이 지역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서로 마음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공양간에서 밥을 먹다 스님을 뵙고 갑작스레 말씀을 여쭙게 되었는데 마침 주지스님이셨다. 자리를 옮겨 관음상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지스님은 “약탈당한 기록이 확실하고, 원위치가 밝혀진 우리의 문화재인 만큼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현재까지 한국과 일본은 금동관음상을 두고 소유권 분쟁 중이며, 2017년 이 소송을 맡은 대전법원에서 원래 소유주로 알려진 충남 서산시 부석사로 인도하라는 판결을 냈다. 하지만 지난 6월, 첫 번째 판결과는 다르게 복제품을 만들어 원봉안처인 서산 부석사에 두고 진품은 일본으로 돌려주자고 재판부가 나서 제안한 상황이다.

서산 부석사 관음상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다. 이는 단순히 서산 부석사만의 유산이 아니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의견은 분분하다. 물론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해 망가져가고 있는 우리의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맞는지,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는지의 답은 너무나 명확하지 않은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창경궁 고려오층석탑

송승주 기자(원당초6) thdtmdwn06@naver.com
송승주 기자(원당초6) thdtmdwn06@naver.com

문화재환수 디베이트 대회를 준비하면서 창경궁을 찾았다. 그곳에는 제자리를 잃어버린 가슴 아픈 탑이 하나 있다. 이름 하여 고려오층석탑이지만 안내판 하나 없이 쓸쓸하게 서있다.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되는 오층석탑은 창경궁 명정전 뒤뜰에 세워져 있었다. 이 탑은 지대석,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까지 완전하게 갖춘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는 왕권 강화를 위해 불교를 나라의 국교로 삼았다. 그러면 유교를 숭상하던 조선시대의 궁에 무슨 일로 고려시대의 탑이 서있게 된 것일까?

일제 강점기 일본은 박람회를 열었다. 세종로 일대에 전국의 사찰 등지에서 무단으로 가져온 사찰의 석조물들을 전시했다. 이후 일본의 상인들에 의해 상당수가 일본으로 반입됐는데 나머지는 원래 있던 곳과 상관없는 곳들로 옮겨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창경궁 안에 있는 고려오층석탑이다. 우리는 창경궁 안내문 어디에서도 이 석탑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일제에 의해 옮겨진 채 백년 넘도록 그 자리에, 이름도 없이 서 있는 탑이라니.

이 탑을 한동안 서서 바라보는데 탑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주고 싶어!”,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줘!”

문화재는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있을 때, 그 정신과 정성이 함께 만나 더욱 빛을 낸다고 생각한다. 창경궁 고려오층석탑도 하루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가치와 의미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처럼 쓸쓸해보이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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