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아내가 각별하게 지내는 고향 마을의 최월룡 권사 댁에서 애호박과 늙은 오이 등, 사랑의 선물을 잔뜩 받아왔다.  그리고 통마늘도 한 자루나...  시골 냄새와 고향 정감이 온 집안에 가득해 졌다.
통마늘은 알이 단단하고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가지가지다. 모양도 가지가지이고, 껍질을 까다 보면 어느 놈은 통째로 한 알이고 어느 놈은 한 통 속에 여러 개가 들어있다. 열 개가 넘는 잔 알들이 포개 있기도 했다. 

마늘을 까던 아내의 SOS다. 너무 힘들단다. 같이 까잔다. 야구 중계를 보던 TV를 끄고 마늘 까기에 동참했다. 마늘 까기를 시작하면서 잔소리가 또 발동을 건다.

“너무 힘든데 물에 담궜다가 까자!” 조금 까고 내일로 미뤘다.
까다보니 엄지 손톱이 조금 길었으면 싶었다. 하루 더 미뤘다.
“힘들게 까지 말고 깐 마늘을 사먹자!” 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까서 파는 마늘은 비위생적일 수도 있구요. 이렇게 맛있는 마늘을 어디서 만난대요?”

여성상위시대의 영감은 더 이상은 말을 아끼는 것이 상책이다. 이 시대의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아내가 깐 마늘은 한 무더기 쌓였는데 내가 깐 마늘은 몇 쪽인가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잘 깐단다. 진짜 칭찬인가? 전략인가? 헷갈렸다.

그래도 몇 알을 까느냐 보다는 남편하고 같이 마늘을 깐다고 좋아하는 아내의 속내를 읽으며 속으로 씩 웃는다. 나도 철이 조금은 드는 것 같다. 그래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지!

그러면서도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 자신을 어쩌지 못한다.

야구 게임은 어떻게 되고 있나? 그리고 마늘의 모양이 가지가지 인 것은 인생이 여러 가지인 것하고 비슷하고, 각기 자기의 생각들이 분출하는 민주사회의 양태와도 비슷하지 않은가? 아내의 작업 능률과 나의 작업 결과를 똑 같이 대접하고 평가하는 것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마늘을 까기 전에 물에 불려서 까자는 아이디어는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손톱이 좀 길어지니 까기에 능률이 좀 오르는 것 같았는데,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기구와 시스템의 개발은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평등이란 무엇이며 그 가치는 무엇인가? 인권이란 무엇이며, 정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 가? 그리고 어떻게 실현돼야 하는가?

마늘을 까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부질없는 잡생각들이다. 그래도 내 혼자 하는 속생각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서 딴 생각하지 말고 마늘 까기에 집중하라는 꾸중?은 듣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러니, 난 행복한 영감이다. 행복은 내가 느끼고 누리는 것이라니까!

마늘을 까면서 경제 원리와 정치체제, 인생철학까지를 생각하다니 참 한가하고, 한심하고, 웃기는 영감이다. 그러면서 이 복잡한 시대와 빠르게 달라지는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느 한 가지 철학이나 원리로 밀어붙일 상황이 아닐 테니 말이다. 복잡한 세상, 어지러운 세태, 정신들 차려야 할 텐데... 제발 <내가 다 할 수 있다. 내가 모든 역사를 새로 쓴다.>는 식의 환상이나 자만은 갖지 않았으면 싶다.

마늘을 까며 무탈한 주변의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자신을 돌아본다. 세사(世事)에서 자유로운 영감은 일단은 편안하다. 그리고 행복지수가 높다는 어느 섬나라의 순박한 사람들 이야기도 떠올려 본다. 

저녁에 상추쌈에 고추장을 찍어 먹은 마늘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신토불이의 맛, 사람 사는 작은 행복이 바로 이것 이렸다. 그러면서 엉뚱하게, 단군의 어머니가 맛있게 먹고 효험을 본 것도 이 마늘과 쑥이었다는 설화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늘과 쑥을 버무리면 어떤 맛이 날까? 라는 생각도...

이렇게 온갖 것들을 생각하며 또 그 생각들을 버무리며 하루를 보낸다. 생각을 많이 하니 치매 걱정은 아니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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