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당진신문에 든든한 힘이 되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본지 김희봉, 이선우 객원기자다.
당진시농민회 협동조합개혁위원장이기도 한 김희봉 기자는 당진시 농업전반과 노동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고 있으며, 방송작가인 이선우 기자는 당진공감이라는 코너를 통해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며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이에 당진신문은 창간 29주년을 맞아 김희봉, 이선우 객원기자에게 현재 당진신문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최근 당진신문의 적극적이고 심층적인 보도자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아직까지 외부에서 바라보는 편견과 독자들과의 소통 부족을 우려하고 있었다.


“선입견을 깨뜨린 당진신문”
김희봉 당진시농민회 협동조합개혁위원장

먼저 당진신문 창간을 축하하면서 척박한 지역신문 경영여건과 신문사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생각해보면 독자로서 당진신문에 무엇을 바란다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다만 초기 당진신문은 보수성향의 신문으로서 지역의 진보적 인사들이 창간주주로 참여한 경쟁지와 비교해 보수언론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동자 농민들의 문제나 성소수자문제처럼 보수신문이 다루기 어려운 진보적인 문제도 비교적 공정하게 다루며 사회적 약자들의 의제도 적극적으로 보도해주고 있다.
필자가 당진신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지역신문들의 경영이 그리 녹녹치 않아서 대게 광고와 자본 중심으로 취재 편집되는데 반해 시민단체들의 지역운동과 진보정치에 지면을 할애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민객원기자들에게 파격적으로 지면을 배려해주는 당진신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한 사건에 대하여 심층적이고 탐사적인 기자의 보도자세이다.
지역신문의 기사가 공정성과 공평성을 갖지 못하는 원인 중에는 기자가 지역현장을 파악하기도 전에 그만두고 사안에 대한 인식부족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당진신문의 기사를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당진신문에 대한 생각이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당진신문의 하청노동현장의 산업재해문제와 시립합창단의 비정규직고용불안, 농민들의 쌀값문제와 농협비리, 고압철탑 라돈침대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에 대해 지역사회의 공기로서 언론의 역할에 충실한 당진신문에 박수를 보낸다.
바라건대 이제 당진신문은 언론 노동자들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이었으면 한다. 기자들의 능력을 키우지 않고 빼먹기만 한다면 그 신문은 멀지 않아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에서도 이제는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구성원 전체의 생각이 들어간 편집이길 바라면서 특별히 지면구성에서도 스마트 모바일시대에 맞는 지면 구성을 기대해본다.
대게 언론사와 기자는 기계적 공평성과 형식적 공정성에 매몰되어서 노동자 농민과 자본가 행정관리를 똑같은 비율로 갑과 을의 주장을 담고 있는데 당진신문 만큼은 정의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으면 좋겠다. 또 당진신문이 앞으로 행정과 의회권력 그리고 자본의 권력을 감시하는 제3의 권력으로서 제구실을 다할 때 독자들이 공익기사에 대하여 후원해 달라는 것이다. 지역신문기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근무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다루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현명한 시민 독자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기자들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약자들을 위한 진실을 캐기 위해 탐사보도에 나설 수 있는 것도 결국 독자들이 기사에 아낌없는 구독료와 광고주문이란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적 시민의식이 척박한 당진지역에서 그 어떤 진보적 신문보다 더 진보적인 관점에서 보도하는 당진신문의 기사에 대해 시민단체의 활동가로서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당진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하고 고립된 현장에 늘 당진신문의 기자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맑은 바람은 옛 친구 찾아오듯”
이선우 방송작가 

연재를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해가 바뀌었다. 그때 나는 내가 바라는 당진신문의 그림을 EBS의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느꼈던 소회에 빗대어 그려보았다. 29주년 창간을 기념하는 기고를 제안 받고 다시 앉아 골똘히 생각해보아도, 언론의 책무가 별반 다름이 없기에 몇 자 옮겨 본다.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보다 ‘몰랐던 나’를 비로소 알게 된 깨달음이 더 크다. 지색채널e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과 더불어 ‘몰랐던 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중략) 어떤 기사거리를 어떻게 알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사거리를 제외한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니 언론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소외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알 수 있도록,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 2018년의 당진신문이 당진시민에게 있어 그러한 창이 되어주길 바란다.”
29년이라는 긴 시간을 당진 시민과 함께 해온 당진신문. 정말이지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객원기자로 활동하기 이전의 나는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학창시절엔 지역 신문을 들여다볼 여력이 없었고, 당진에 내려와 살면서도 한동안은 촉수가 서울로 뻗어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최효진이라는 기자의 이름을 접하게 됐다. 당진신문 기자라던데! 당진신문??? 그렇게 시작된 관심이 오늘로 이어져 이런 글을 다 쓰고 있다. 하여 가끔 마감에 쫓길 때는 영락없이 내 발등을 내가 찍었구나 싶다가도 번듯하게 배달되어 온 신문을 펼치면 괜스레 누를 끼친 건 아닌지 걱정도 따른다. 그런 와중에 작은 바람을 하나 보탠다면 열심히 뛰는 당진신문 식구들의 노고가 보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당진시민들에게 곱씹어지기를, 회자되기를 바란다.
객원기자로서의 바람과는 달리 어쩔 수 없는 현실, 누가 종이신문 보냐고 자조하는 시대다. 언론은 신뢰를 잃었고 기사는 아시다시피 다 고만고만하다. 온라인에 들어가 검색하면 다 볼 수 있다. 그런 위기 속에서 당진신문이 걸어야 할 길은 어디 딴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신문, 그 안에 있다. 신문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일관성 있는 편집 방침을 유지한다면 이에 공감하는 독자층의 신뢰는 더 깊어질 것이다. 독자와의 소통과 교감도 놓쳐서는 안 될 코드다. 당진신문의 경우 특히 이 부분이 취약하다 보여 진다. 그간의 여건상 어려움이 있었다하더라도 앞으로는 특히 신경 써야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이 살인적인 더위를 물리칠 선수, 다음 주면 ‘입추’다. ‘무더위는 혹독한 관리 떠나듯 물러가고, 맑은 바람이 정든 벗 찾아오듯 불어온다’는 두목(杜牧, 당나라 후기 시인)의 시구처럼 가을이 머지않다는 이야기다. 그 반가운 길목에 서서 당진신문의 밝은 내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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