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나 [제12회 나루문학상수상작]
어리석은 나 [제12회 나루문학상수상작]
  • 당진신문
  • 승인 2018.06.29 20:56
  • 호수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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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례 popcorn0527@daum.net

도대체 양심이라고는 한 자락도 없는 놈이다. 내가 그때 그 놈을 왜 그대로 두고 돌아 왔는지 생각할수록 분하다. 인정사정 볼 필요 없이 두 다리를 완전히 꺾어 놨어야 했다.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 한 놈, 생각 할수록 괘씸해서 성질이 치받친다. 어떻게든 잡히기만 한다면 이번에는 용서하지 않겠다.

계절은 어느새 오월로 접어들어서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바쁜 계절이다. 격렬한 봄은 사방에서 장엄하고 경이롭게 짙어져있고 농부들의 일손도 쉴 여가가 없이 분주한 때이다.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인삼밭에도 잡초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밀고 올라와 있다. 날마다 김매기에 여념이 없는 날이었다.

제법 키가 자라서 줄기에 막 새 힘을 실어올리고 있는 잘 자란 인삼 사이에 작고 어설픈 새의 둥지가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열 개가 넘어 보이는 새알이 보였다. 무슨 새가 애지중지 가꾸고 있는 내 인삼밭에 배짱도 좋게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놓았을까? 계란보다는 작고 메추리알 보다는 좀 더 크다. 약간 파르스름한 빛깔을 띠고 있는 것이 여간 소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종일토록 일을 하고 어느새 해가 기울어 갈 무렵에 그 새의 둥지가 궁금했다. 소담스러운 알이 있던 이 그 자리를 찾아간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커다란 까투리가 앉아서 알을 품고 있었다. 사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알을 꺼내갖고 이웃사람에게 자랑도 하고 무슨 새의 알인지도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꿩의 둥지였던 모양이다. 당황한 꿩은 도망갈 법도 하건만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는 나를 잔뜩 겁먹은 눈으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제 손만 뻗으면 꿩도 알도 취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위치까지 내가 이르렀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알과 함께 죽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는 거기에 차마 내 못된 손길을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이웃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조금 전에 보았던 꿩의 지극한 모성 본능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못 된 인간보다 더 낫다고,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이었다고,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이웃사람은 급하게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손전등과 비닐봉투 마대자루를 챙겨갖고 어서 그 밭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는데 내일 아침에 가자고 나는 한 발 물러섰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내 의식의 밑바닥에는 꿩을 지키고 싶은 연민도 깔려있었다. 하지만 이웃사람은 내일 아침이면 늦는다고 아예 차에 올라앉아서 몹시 서둘러 댔다. 하는 수 없어서 어두워진 밭으로 가는 동안 이웃사람은 꿩이 알자리를 들키고 나면 그 즉시 둥지를 옮기고 알은 품으로 안아서 이동을 한다했다. 나는 그 말을 수긍할 수가 없었다. 한낱 날짐승에 불과한 꿩이 무슨 재주로 그 많은 알을 옮길 수가 있을까, 싶었다. 밭에 도착해서는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꿩이 있던 그 자리는 빈 둥지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밭을 둘러볼 요량으로 그 밭에 갔을 때 더욱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 자란 인삼이 여기저기 쓰러져서 시들어 있고 인삼이 있던 자리는 마구 파 헤쳐져있는 것이다. 이건 분명히 꿩의 소행이다. 둥지를 옮겨서 새끼를 부화하는데 성공은 했나 보다. 그렇다면 먹이 활동은 다른 곳에서 해야지 저를 살려준 내게 보답하는 것이지 싶다. 그런데 이렇게 분탕질을 치다니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줄줄이 새끼를 몰고 와서는 땅을 부리로 파헤치고 인삼을 쪼아 먹는 모양새를 보다 못해 놈을 ㅤㅉㅗㅈ아가 보지만 어림없다, 이제는 잡을 수가 없다. 내 속을 뒤집어 놓을 작정이라도 했는지 날마다 와서 인삼밭을 초토화 시키고 있는 저놈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약삭빠른 사람을 보고 꿩 병아리 갔다고 하더니 실감이 된다. 제가 불리할 때는 엎드려서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기회가 포착되면 재빠르기가 다람쥐 보다 더 빠르다. 그런 그놈을 잡아보겠다고 날마다 집요하게 쫓아다녔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꿩에게 내가 졌다.

정수리가 데일만큼 뜨거운 칠월 땡볕 아래서 비지땀을 흘리면서 꿩 망을 둘러치는 일을 이틀째 하고 있다. 내 지능이 꿩을 못 따라 가다니 싶어서 더 속이 상하고 화가 치민다. 두 달 전 그때 잡아서 혼 줄을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알량한 동정심도 지금은 어리석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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