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이스라엘과 요르단 그리고 터키를 둘러보는 성지 순례를 다녀왔다.
성지 순례는 보고 느끼고 깨닫는 여행이요, 예배였다. 순례에서 돌아온 토요일을 뿌듯함으로 마감하고 일요일 새벽, 욕실에서다. 샤워하고 둘러보니 목욕탕 구석에 지저분한 게 보였다. 물을 뿌리며 구석을 씻어 내려고 몸을 숙였다.

순간, [아차! 넘어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렵게 일어났다. 먼저 샤워기는 껐다. 방으로 들어갔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가 조금 아팠다. 팔 움직이기가 어려웠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교회도 다녀왔다. 곧 낫겠지 했던 어깨는 좀 더 불편했다.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되었다. 좀 더 아파졌다. 안되겠다 싶었다. 집 앞 정형외과 의원에 들렀다.

<오른 쪽 어깨 쇄골의 인대가 나갔습니다. 큰 병원에 가보시지요.>

어느 병원으로 갈까? 대학 부속 병원이 떠올랐으나 지난해 [급성 후두개염]으로 찾았다가 입원이 안 돼 혼이 났던 생각이 났다. 수소문 끝에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 전문 병원을 골랐다. 바로 그 병원으로 갔다. 내일 입원하란다. 진짜 심한 통증이 계속됐다. 아픈 게 처음이 아닌데, 이건 진짜 너무 아팠다. 진통제로 달래고 참아야 했고, 밤에는 수면제를 먹고서야 잘 수 있었다.

막상 병원의 처치는 간단했다. 입원 다음 날, 수술하고 이틀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그러나 <아픈 게 이렇게 힘든 것이구나! 참기가 이렇게 어렵구나!>를 절감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난, 진짜 아픈 환자였다. 오른쪽을 쓰지 못해 왼 팔로 밥 먹는 건 불편했지만 별거 아니었다. 지인의 전화 받고 어깨뼈의 인대가 나가 치료중이라고 했더니 “그거 정말 아파요.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그 말만으로 고마웠다. 외톨이가 전장에서 전우를 만나는 기분일가?

석 달을 지내고 다시 입원했다. 인대를 대신했던 철심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 받던 수술에 비해 간단한 것이고 걱정도 되지 않는 시술이었지만 이것도 엄청난 고통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수술실에서다. 마취담당 의사가 이것저것 물으며 마취상태를 점검했다. <마취가 덜 되면 회복이 빠를 테고 마취가 잘되면 덜 아플 텐데 어떤 게 낫지> 하는 얄팍한 계산을 하는 자신에 그 와중에도 쓴 웃음을 지어야 했다.

입원실로 옮긴 뒤 마취에서 덜 깬 오른 팔이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 마취가 남아 있는 지금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마취가 깨면 다시 무지 아플 터인데 어느 것이 낫지!> 라고 생각하는 자신에 또 쓴웃음 지어야 했다. 모든 것의 기준이 [아픔]이었다. 아픔이 삶의 모든 거 같다.

하루 만에 퇴원했다. 철심을 빼고도 몇 차례 외래환자로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수술 자리의 실밥을 뽑는 치료를 받았다. 병치레는 이제 끝이다. 오른 팔을 들어 올려도 아프지가 않다. 만세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다.

되돌아보면, [아차]의 순간은 예견된 일이었다. 몇 해 전에 고인이 된 엄기형 선배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서 있다가 주저앉았는데, 고관절이 나가 고생하다 돌아 가셨다. 나도 몇 차례 넘어졌으나 무사해서 무시하고 무심하게 지내왔다. 징표와 예고를 가벼이 한 벌이 [아차!]가 만든 석 달의 아픔이었다.  그러나 대학병원을 고집하지 않고 전문병원을 택한 것은 참 잘한 일 이었다.

수술 후 무지 아픈 상태로 집에서 약물 치료를 하고 있을 때였다. 초등학교 동창인 김 권사님이 전화했다. “혈액 암으로 서울대 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무지 아프고 무지 힘들어요. 목사님 기도 받고 싶어요” 혈액 암 선고 받고도 여러 날을 기다려 입원했다고 했다. 입원을 기다리는 동안 병세는 더욱 악화 됐다고...

김 권사님은 아내인 노목사와도 여러 차례 교류가 있었고 믿음이 잘 통하는 사이였다. 그 전화를 받고 나니 내가 아픈 것은 아픈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아프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며칠 전에 김 권사님과 다시 통화했다.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고 체력이 달려 중간에 멈추고 퇴원했어요. 부작용으로 하체에 심한 염증이 생겼고, 아파 죽겠는데 젊은 의사는 염증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그래서 퇴원한 후 개인병원에서 염증치료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 권사의 치료가 성공하고 아프지 않은 밝고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나와 내 가족이 다시는 병원 신세를 지거나 수술 받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건강하게 주님 섬기는 삶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드린다.

나 자신부터 다시는 넘어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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