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샘 호천웅

지난 5월 18일자 한 일간지에서 <열린 음식 잡채>라는 글을 읽었다. 외교관 출신인 신상목 씨가 쓴 글이다.

“재외 공관 근무시절, 외국인을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는 외교행사를 할 때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잡채였다. 잡채를 먹어본 외국인들은 <엄지 척>과 테이스트 굿(taste good) 연발한다.
잡채는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코리안 후드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달달 복은 소고기와 양파의 고소한 향을 덧입힌 쫄깃한 당면을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부재료인 시금치와 당근은 영양 균형과 청홍(靑紅)대비의 시각적 즐거움마저 더한다.”

잡채에 대한 글을 읽으며 비빔밥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물학자인 최재천 씨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쓰기 시작했다는 통섭(統攝,consilience)이란 말을 생각했다.
최 교수는 통섭이란 다른 것들이 각기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어울려 멋진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비빔밥과 무지개를 예로 들었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음식들이 각기의 맛을 유지하면서 어울려 전체의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낸다. 또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 그대로 있으면서 전체로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창출한다고 했다.

꽃이 한참 피던 계절에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개나리와 진달래 등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모습에 취하기도 했었다.
요즘은 뒷산을 오르며 푸른 나무숲을 보고 또 다른 통섭?을 체험한다. 푸른 아름다움을 즐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기에도 다른 여러 가지 나무들이 섞여 있었다. 소나무도 있고 참나무도 있다. 또 다른 나무들도 함께 어울려 푸른 숲의 멋과 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산속 나무 등걸에 앉아 극한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를 걱정한다. 그리고 다툼과 대립을 치유하고 평온과 안정을 찾는 길이 통섭에 있지 않을 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흔히들 통합을 말하는 데 통합은 이미 불가능한 지경인 것 같다.
요즘의 세태를 보면 이미 물 건너간 형국이 아닌가? 
그리고 통합이 그렇게 좋은 것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비빔밥이나 잡채를 냄비에 넣고 끓이면 어떤 음식이 될 가하고 상상해본다.
내 욕심을 줄이고 남을 존중해야 한다.
지도자라는 사람들부터 그리고 정치 패거리들과 이익집단들이 자기를 낮추고 이기를 버리지 않는 한 나라의 어지러움과 혼란과 다툼을 가시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이리 됐는가? 우리 사회가 온통 대립과 다툼과 싸움의 풍토가 돼 버리는 것 같아 슬프다.
나라의 문제는 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윤리와 도덕과 교육이 무거운 나라가 돼야 한다.
정치지도자 들과 학자들, 언론 그리고 교육자들이 먼저 자기와 패거리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통섭의 길에서 희망의 등불 찾기를 희망한다.
잡채와 비빔밥, 그리고 무지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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