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아이
갈 곳 없는 아이
  • 이선우 객원기자
  • 승인 2018.05.21 10:19
  • 호수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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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 다음 나갈 채비를 한다. 사촌형과 배드민턴을 한 번 해본 큰아이가 연습이 필요하다며 배드민턴 라켓을 꺼내든다. 축구 연습을 해야 한다며 축구공도 챙긴다. 이에 질세라 작은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가겠다고 앞장선다.

그날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간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로 북적이던 학교 운동장에는 다이어트 삼아 경보하는 아줌마 몇과 운동 마치고 나와 앉아있는 축구부원 몇 명, 팔짱 끼고 배회하는 여학생 둘 정도가 있었다. 축구부원들이야 그렇다 치고 저 여학생 둘은 왜 이 시간에 여기서 저러고 있을까? 축구부원 중에 누구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나? 쪽지를 전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서 주변을 빙빙 도는 건가? 집에 가긴 가겠지? 내내 마음이 쓰였다. 작은 아이가 찬 축구공이 여학생들 쪽으로 또르르 굴러갔다.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셀카를 찍던 둘은 작은 아이에게 귀엽다며 아는 척을 했다. 언니들의 호의적인 반응이 좋았는지 작은 아이는 건성으로 놀아주는 엄마를 버리고 언니들 주변에서 공을 차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축구부원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여학생들도 멀어져갔다. 셔틀콕 주우러 다니기 바빠하던 큰아이가 라켓을 내려놓고 축구를 하겠다고 뛰어왔다. 아빠를 콜키퍼로 세우고 작은 아이까지 합세해 승부차기 연습이 시작됐다. 멀찌감치 서서 구경하던 내 옆으로 남자 아이 하나가 은근슬쩍 다가와 앉는다. 그러더니 대뜸 말을 걸어왔다.

“아줌마. 이게 뭐게요?”
“빵이네. 진짜 같은 가짜빵~.”
“에이. 금방 맞추시네요.”

덩치로 봐서는 큰아이 또래로 보여 물었더니 초등 최고참이 아닌가. 그런 녀석이 주머니에서 꺼내든 건 가짜 소라빵이었다. 저녁 8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학교 운동장을 배회하는 남학생이 가짜빵을 꺼내들고 말을 걸어오다니.

“너 혹시 밥은 먹었니? 왜 가짜빵은 들고 다녀?”
“그냥요. 밥은 먹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5시에 집에서 밥을 먹었는데 아빠가 손님이 온다고 나가라고 했다는 게 아닌가. 그럼 집엔 언제 들어가냐고 물으니 9시에 들어오라고 했다며,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고 남 말 하듯 중얼거렸다. 엄마는 뭐하시는지 묻고 싶었지만 엄마가 안 계실 수도 있으니 묻지는 않았다. 어떤 손님이기에 네가 집에 있으면 안 되는 거냐고도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손님이 올 때마다 아이는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 걸까. 혹시 학대를 받는 건 아니겠지? 혹시 이 녀석 가출해놓고 거짓말하는 건가? 덤덤하게 앉아있는 아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서로 공을 차겠다고 싸우고 징징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용기를 내 소리쳤다. “저도 같이 해도 되요?” 하나둘 빠져나간 운동장에 남은 건 우리들뿐이었고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저보다 몇 살이나 어린 동생들과 시시한 공차기를 하는 아이를 한참 지켜보았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임을 알리고 얼마 뒤, 아이는 ‘한 번 만 더요’를 두어 번 외치며 공을 차고 운동장을 떠났다. 집에 들어가 보라고 당부라도 건넸어야 하는데 아이는 어느새 학교 대문을 타고 넘는 중이었다. 집이 있어도 갈 곳 없는 아이. 빈 운동장에 웅크린 어둠을 닮은 그 아이의 뒷모습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