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중학교 이한복

2022년 8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들은 지난 4년 간 준비한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이용한 베를린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냥 들떠있다. 우리 부부와 두 아들 부부, 손주들을 포함하여 가족 아홉 명이 각자 자기 짐을 분주하게 챙기고 있다.

둘째 아들이 살고 있는 대구에서 가까운 부산국제역에서 출발하여 서울국제역, 블라디보스톡, 하바롭스키,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모스크바, 바르샤바를 거쳐 베를린에 도착할 예정이다.(남북 철도가 분단되기 이전인 일제 강점기까만 해도 오늘의 서울역은 국제역이었음). 거리는 무려 11,971km에 달하며, 경유지 관광을 포함하여 편도 15일 내외, 총 여행기간은 대략 한 달간이다.

첫 번째 도착지인 블라디보스톡은 우리 민족과 러시아의 접경지이다. 블라디보스톡은 5,000년 전부터 우리 민족이 활동하던 터전이었으며 현재도 발해성터를 비롯하여 민족혼을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민족과 나라보다는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기에 급급해하는 후손들과 항일투쟁 유적지를 둘러보며 우리 선조들의 애국혼을 회상해 보았으며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할 소중한 기회로 삼았다. 아쉬운 점은 시간적인 제약으로 인하여 안중근 의사가 이토우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을 둘러보지 못한 점이었다. 1991년 이후 러시아 연방의 수도인 모스크바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장기간에 걸친 이념의 장벽으로 인한 거부감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붉은 광장, 크렘린궁전, 바실리성당, 볼쇼이 극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번 여행의 백미는 역시 베를린이다. 돌이켜 보면 아직까지도 감격스러운 장면이 생생한 2018년 4월 27일에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체결한 판문점 선언의 후속 조치로 남북철도가 연결되었으며 이러한 결과로 유라시아 철도를 이용하여 중국 또는 러시아를 통하여 유럽 여행까지 가능하게 된 것이다. 2016년에도 베를린 장벽을 다녀왔지만 6년 만에 다시 보는 장벽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저 다른 나라의 문제로 느껴져 부러우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는데, 같은 장벽을 바라보면서도 이제는 조만간에 접하게 될 것만 같은 휴전선의 모습이 중첩되어 나타났다. 우리들은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남북통일 만세’, ‘평화통일 만세’, ‘통일한국 만세’를 힘껏 외쳤다. 주위에 있던 여행객들도 만세에 호응을 보내 주어 그마나 민망함을 덜 수 있었다. 바르샤바, 하바롭스키 등을 거쳐 되돌아오는 길은 기나긴 여정으로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나의 손주들이 통일의 주역이 되어 하나 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심신의 피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개운해졌다.

여러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지 않나요? 모두가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을 유달리 믿고 싶어지네요. 함께 꿈꿔봅시다.

판문점 선언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들이 이념의 사슬에 얽매여 같은 민족에 대하여 얼마나 큰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주 어릴 적 기억 저 편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공산당인 북한 사람들은 뿔 달린 늑대쯤으로 묘사되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들은 너무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도 지극히 온전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 어두운 선글라스를 쓰고 상대방은 바라본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아야 한다.

현재 우리 남한은 청년 실업, 출산율 저하, 지역 간 계층 간 갈등과 반목 등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가 어려우며, 북한은 일상적인 의식주를 유지하기에도 버거울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총체적 난관에 봉착해있다.

통일에 대한 환상도 금물이다. 그렇다 하여 통일비용, 이질감, 위화감 등을 지나치게 과장하며 통일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지리적으로 반도의 위치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고립된 섬으로 너무도 억울하게 살아왔다. 위에 명시한 남북한 간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우리 민족의 중흥기를 열어갈 너무도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열린 마음으로 민족의 내일을 걱정하면서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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