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나루문학상 수필부문 작품상 수상작]
전도선

“아담한 국수봉 옆에 세우고, 말쑥한 아미산 우러러 보며, 그 기운 그 모습에 나를 기르는 우리에 배움터다 기지국민교~” 이 노랫말은 기지초등학교 교가이다.

나는 기지시에서 태어나 현재도 기지시리에 살고 있다. 당진이 고향이라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국수봉…. 유네스코 무형문화제인 기지시 줄다리기 행사 때 첫날 항상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봉에는 팔각 정자와 몇 백 년이나 지났을 어른 팔 둘레로 3명은 족히 넘을 법한, 어마어마한 벚꽃나무가 몇 그루 있다. 2봉 정상에슨 헬리콥터 착륙장이 있었고, 아래쪽에는 예비군 아저씨들에 유격훈련장이 있어 철조망이 쳐져있는 각계 전투장도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많은 가정들이 나무를 이용해 난방과 식사를 준비했기 때문에 국수봉은 주변 주민들에겐 매우 고마운 존재였다. 주민들은 솔걸과 삭정이, 등걸 등 난방과 식사를 준비에 필요한 땔감들을 국수봉에서 구했으며, 어린 우리들은 솔방울을 따 모아놓았다 5일마다 서는 지기시 장날이 되면, 뻥튀기 아저씨한테 갔다 팔아 용돈을 쓰기도 했다.

부모님께 혼나 갈 곳이 없을 때면 산 정상에 올라 실컷 울기도 했고, 맑은 날 국수봉 정상에 서면 저 멀리 한진 앞바다까지 보이던 우리 동네 제일 높고 시원했던 그곳…. 내가 살던 동네 안틀무시는 (지금에 힐스테이트가 지어지고 있는 곳) 베틀 짜는 기계의 안쪽 틀에 모양과 동네 모양이 닮았다 하여 안틀무시라 불리고 있다는 옛이야기도 있다.

눈이 많이 오던 겨울날에는 산토끼와 꿩을 잡으려 하루 종일 산속을 헤매고 다녔던 그곳. 도마뱀과 노루가 있던 국수봉이 그때는 그렇게 크고, 높고, 웅장했었는데 지금 국수봉은 너무나 작고 외소하며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동네 어디에서든 보이던 국수봉 산 정상 팔각정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고 예전엔 상상도 못했었지만 지금은 정상까지 차들이 올라 다니고 있고, 그 흔하디흔하던 산토끼와 뱀들은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도로들도 모양이 많이 변했다. 예전엔 당진에서 버스를 타고 기지시에 올 때 시곡리 성황당 고개만 올라서면 맨 먼저 보이던 곳이 국수봉이었고, 합덕에서 당진을 오다보면 반촌리와 광명리 경계인 독암고개에 올라서면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던 봉우리가 국수봉이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여름철엔 친구들과 수박, 참외 서리를 하면 숨어 먹을 수 있었던 곳도 국수봉…. 하지만 어른들도 우리가 숨어있을 만한 곳을 알고 계셨기에 숨어있을 때면 들키곤 했다.

사춘기 중학교 시절엔, 기지초 뒤편에 있던 땅콩식당이라 불렸던 곳에서 국수봉까지 오르며 여자 친구들과 사랑과 우정을 쌓았던 곳이 국수봉이었다. 형, 누나들은 기타를 치며, 놀던 곳이기도 했던 곳이었다. 이처럼 잊지 못할 수많은 추억과 기억이 서려있는 국수봉이 요즘 어느 땐가부터 작아졌고 볼품없어 지고, 아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본다.

지금에 국수봉 모습은 여기저기 잘려져 나가고 파헤쳐지고 심지어는 낮아지기까지 한 모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문제는 주변이 개발되면서 우후죽순 생기는 아파트들 때문임엔 틀림없다.

지금 주변엔 국수봉 산보다 더 높은 E-편한세상아파트, 롯데케슬아파트, 현대힐스테이트아파트들로 동서남북을 막고 있어 더더욱 답답해 보이고 작아보이지는 않는 건지….

지금 당진은 전국에서도 눈에 띄게 변화하고 개발되고 있으며 발전하고 있는 지역임에는 틀림없다.

도시화가 되어가면서 좋은 점들도 많이 있지만, 예전에 있었던 자연들은 점점 눈과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음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어떡하나? 어떤 게 좋은 건가. 나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시대흐름이 높은 빌딩들이 생기고, 길들이 반듯반듯하게 뚫리는 추세라지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우선인지를 생각하고 고민한 후 개발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머지않아 국수봉이라는 산 이름을 기억해줄 수 있는 사람들조차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이미 기지시라는 우리 동네는 현 주민보다 이주해온 주민들이 더 많아 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예전 만큼에 애향심을 갖고 사는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다.

난 국수봉을 볼 때마다 나의 옛 추억이 그립고, 작아지는 국수봉의 모습에 내 마음 한구석도 작아지며 멍해져온다. 내가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도 늦출 수도 없겠지만, 국수봉에 대한 나의 사랑과 마음만은 영원하리라…. 사랑한다. 국수봉아, 그리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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