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그날
4월, 그날
  • 이선우 객원기자
  • 승인 2018.04.23 10:06
  • 호수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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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맘때, 나는 둘째를 가진 임산부였다. 꽃들이 온천지에 피어나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 들썩거리던 그 봄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만나지 못했던 친구 한 녀석을 만나기로 했다. 결혼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떠나 살다가 당진에 정착하려고 내려왔다는 이야기만 먼저 들었다. 종종 만나는 다른 고향 친구와 더 친한 사이였기에, 셋이 함께 만나는 자리였다.

어디가 맛있을까 고민하다 낙지요리를 파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중국산 낙지라 아쉽다며 낙지덮밥을 주문했다. 술을 즐기는 친구였기에 맥주 한 병을 시켰던 것도 같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이 주르륵 펼쳐졌다. 사람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를 뿐 사는 모습은 결국 비슷하구나 싶은 그런 이야기들이다. 시시콜콜 소소한 수다를 나누며 공감하고 위로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렸다. 그러다 문득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속보 멘트가 귀에 들어왔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잠시잠깐의 무거운 침묵. 바다 위로 기울어진 세월호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단원고 학생 325명 전원구조> 다행스럽게도 전원구조 소식이 함께 전해지면서 여기저기서 안도의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 그렇지!” “야 정말 아찔하다. 구조 못했으면 어쩔 뻔 했니?” “진짜 다행이야” 그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매콤한 낙지볶음을 밥에 넣고 쓱쓱 비벼 한 입 베어 물다 다시 텔레비전 뉴스에 눈을 돌렸다. 저렇게 큰 배가 어쩌다 저 엉뚱하고 깊은 바다에 빠지게 됐을까. 구조된 아이들 모습은 언제쯤 보여줄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찜찜한 보도였다.

그해 시월에 태어난 둘째는 어린이집에 신나게 다닐 만큼 자랐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달라진 건 없다. 배가 왜 침몰했는지, 탑승자들을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진상규명은커녕 제대로 된 사과도 보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라고 배웠지만 그날 그 곳에 국가는 없었다. 이제 합동분향소마저 철거되면 우리는 어떤 말로, 어떤 모습으로 그 비통한 죽음을 기억할 수 있을까.

며칠 전,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에게서 문자가 한 통 날아왔다. “야구잠바가 딱인 날이네. 중학교 애들 수학여행 가나봐.” 잠시 후 어린이집 버스를 타야하는 둘째와 함께 집을 나섰다. 수학여행 가는 친구들이 빠져나갔을 그 운동장에 많은 학생들이 나와 플래시몹을 준비하고 있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코가 시큰해지고 눈물이 흘렀다. 잔인한 4월, 부끄러운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