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 민주노총 당진시위원회 집행위원장

얼마 전 당진의 어떤 지역신문에서 당진시립합창단의 주 20시간 근로시간 변경요구에 대해 2회 연속 보도하였습니다. 당진시립합창단은 14년 동안 문화사절단으로서 지역을 홍보하고 당진시민들의 다양한 문화향유권을 누리는데 한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상태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근로시간 변경을 요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들은 당진시에 의해 고용되어 있으면서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는 약자 중의 약자입니다. 

해당 언론의 전반적인 논조는 시립합창단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악의적 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핵심내용은 지역의 시민단체들이 대책위를 구성하여 발표한 성명서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다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언론이 인터뷰를 빌어 행간마다 드러내는 노동비하, 노동조합 혐오의식 그리고 노동자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인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밝히고자 합니다.

해당 지역신문은 이 지면을 통해 제기되는 내용과 그들의 보도의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럴 경우 다소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와 무관하게 해당기사를 접한 독자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접하게 될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의식과 노동자의 정치적 지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 지역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한 인터뷰 의견을 소개하며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민주노총에까지 가입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세울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라고 여과없이 보도하였습니다.

굳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주적으로 만들어 진 조직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상급단체를 선택할 것인가는 그들의 권리입니다.

또한 당진시립합창단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핵심으로 한 근로조건 개선을 수년전부터 약속을 받아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허무하게 내팽개쳐져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던 것이 그들의 처지였습니다. 그들은 노동조합없이 협의조차 할 수 없음을 자각했으며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더구나 민주노총까지 가입한 것은 더 더욱 잘못된 것인 듯 전합니다. 이는 노동조합의 존재의미를 부정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요구라도 노동조합 결성이전의 요구는 순수하고 노동조합 이후 요구는 불순해 지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모두들 노동존중 사회를 말하는 세상입니다. 당진시립합창단에게는 비록 빈말일지언정 존중과 위로를 전하는 해당언론의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참으로 씁쓸한 봄입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당진시청에 대한 교섭회피 행태에 항의하는 피켓팅을 두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을 압박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혹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실제 이들의 피켓팅은 당진시장이 약속한 성실교섭이 실무선에서 지켜지지 않는 것을 규탄하고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입니다. 이를 선거와 연계하는 것부터 본질을 흐리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이 문제는 당진시와 시립합창단이 교섭을 통해 풀어갈 문제라는 점, 즉 문제해결의 핵심은 당진시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설사 보도된 대로 선거를 앞두고 사용자인 당진시장을 압박하는 것이라 한들 무엇이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자기권리 주장을 위해 선거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요? 현행법은 주민에 의해 선출된 지자체 대표자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 정권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국민들이 광장에서 직접 정치주체로 참여하여 탄핵시키고 세워졌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모든 국민이 정치주체로서 참여하고 그를 통해 역사를 진전시키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는데 유독 노동자의 이름으로 참여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나 봅니다. 그분들의 의식 속에 ‘노동자 정치 혹은 정치적 주체로서 노동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선거철 표나 찍는 존재, 이왕이면 자기를 지지하는 세력에 찍어주면 더욱 좋은 존재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요?

노동자와 서민이 정치의 주체로서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제겐 많이 불편한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어리석은 자의 과대망상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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