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범 수필가/ 전 교육공무원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분수령을 맞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4월 27일 정상회담을 하는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5월 말 성사될 전망이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 북한 정상의 만남은 역사상 처음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군사옵션까지 거론되며 일촉즉발의 대립과 긴장 구도가 대화 국면으로 급선회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되는 셈이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지 65년 만에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훗날 한반도 평화를 일궈낸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이전 두 차례 정상회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열린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비핵화에는 눈을 감고 대북 지원과 교류·협력에만 열중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해준 것이 됐다. 이제 북은 핵 보유국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의제가 있을 수 없다. 북핵 폐기 아닌 다른 의제는 합의해봤자 실현될 수도 없다. 비핵화는 형식적으로 언급하고 또 남북 교류, 대북 지원이나 나열하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김정은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한·미가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동시적인 조치를 한다면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했다. 비핵화한다면서 유엔 제재를 이완시키고 실제 비핵화 과정에는 수많은 난관을 만들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들려는 수법이다. 청와대는 북핵 폐기와 북 체제 보장을 한꺼번에 푸는 일괄타결식 해법을 내놓았었다. 그러다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해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단계 조치'를 언급하자 방향을 바꿔 '단계적 조치와 일괄 조치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식의 말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동결-불능화-신고-사찰-폐기 같은 단계별 이행 계획을 제시하며 미국이 반대급부로 어떤 보상조치를 내줄 것인지 요구할 게 분명하다. 주한미군 철수, 핵우산 철회 같은 한미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의 실패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며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일괄타결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북·미 간 간극 사이에서 김정은-트럼프 회담의 접점을 찾아내는 게 문 대통령의 역할이자 가장 고심하는 대목일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서명을 북한과의 협상이 타결된 이후로 미룰 수 있다"면서 "이것이 매우 강력한 카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편을 들지 말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거기에다 이제 한국 정부와 북한이 '단계 조치'에 합의하고 미국에 이를 들고 오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은 핵 문제는 미국과 협상하고 한국과는 경제 지원 문제만 논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김정은이 '핵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얘기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문 대통령에게는 '비핵화를 하겠다'는 원론적 언급만 하고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망을 흐트러뜨릴 전략에 주력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북의 이런 전략에 호응하게 되면 김정은의 오판을 불러 결과적으로 북핵 폐기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북은 한 달 간격으로 열리는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경쟁시켜가며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을 것이다. 북이 핵 폐기 외에 다른 출구가 없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려면 남북 정상회담에서부터 비핵화 단일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북이 핵을 버릴 경우에 펼쳐질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설명하되 모든 것은 핵 폐기와 그 이후 대북 제재가 해제된 뒤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 우리가 김정은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는 대북 제재밖에 없다. 북과 대화를 이어가면서 끈질기게 비핵화를 설득하되 대북 제재만은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김정은의 오판을 막을 수 있다. 김정은이 핵무장과 제재 해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한반도는 최악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김정은이 핵무장과 제재 해제 중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해야만 그나마 비핵화의 문이 열린다.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제재 해제는 없다'는 원칙만 끝까지 지켜도 최소한 김정은의 위험한 오판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북-미에 앞서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긴밀한 한미 공조 아래 김정은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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