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위한 길에 종교적 차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독립을 위한 길에 종교적 차이는 문제가 아니었다!!
  •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18.04.02 10:09
  • 호수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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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당진신문=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천도교와 기독교가 별도로 준비하던 독립운동은 이승훈이 중앙학교 교장이던 송진우를 찾으면서 계기가 만들어졌다. 당시 중앙학교는 이른바 ‘불령선인’의 집결지였다. 중앙학교는 ‘배일사상’을 가진 사람들만이 들락날락했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후일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문학교이기도 하다. 이런 중앙학교에 1919년 2월 초 이승훈이 기독교계가 준비하던 독립운동 계획을 상의하기 위해 송진우를 찾았던 것이다. 기독교의 독립운동 계획은 송진우를 통해 최남선과 최린에게 전해졌고, 이를 계기로 이승훈이 손병희와 연결되었다.

손병희와 이승훈의 만남은 기독교 측이 추진하는 독립운동과 천도교에서 추진하는 독립선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손병희는 독립을 위해서는 기독교와 함께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종교적 차이를 넘어 하나로 합쳐야 성공할 수 있다면서 천도교와 기독교가 함께 독립운동을 해 나가자고 이승훈을 설득하였다. 그 결과 독립청원을 목표로 추진하던 기독교계가 천도교에서 추진하던 독립선언에 함께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기독교 목사들이 자금이 부족하여 독립운동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당시로써는 어마어마한 거금인 5천원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빌려주었다. 더 나가서 천도교와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와 유림도 참여하는 전국적 민중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합의하였다.

불교의 참여는 만해 한용운이 평소 친분이 있던 최린을 통해서 연결되었다. 파리강화회의에서 약소민족의 독립을 논의한다는 소식을 접한 한용운도 일찍이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한용운은 최린을 통해 천도교가 기독교와 함께 독립선언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불교도 함께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독립선언 준비에 불교가 가세하면서 상황은 빠르게 진척되었다. 하지만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 선정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독립선언의 의미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를 선정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유림을 포함한 구한국 대신들까지 민족대표로 모시고자 하였다. 구한국 대신이던 박영효, 한규설, 윤용구, 김윤식, 윤치호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나서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독립운동에 찬성하지 않았다. 변명으로 일관하며 교묘하게 거절할 뿐이었다. 이들의 거절 이유를 살펴보면 그야말로 가관이었고, 이들이 과연 구한국의 국사를 담당했던 대신이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당시 59세이던 박영효는 조선말 개화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일찍이 약관 24세이던 1884년에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런 박영효가 독립선언 참여를 권하는 송진우에게 “조선에는 인물도 없고 백성들의 지혜도 진보하지 못하므로 그런 일은 성취되지 못할 것이라서 참가하지 않겠다”는 말로 참여를 거부했다.

또한 “장래는 세상이 변해 가므로 동경정부에게 조선의 문제를 물어 보아 자치로 하거나, 또는 달리 좋은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강도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에는 어떠한 관심도 의지도 없다는 표현이었다. 이런 박영효가 오직 관심을 가졌던 일은 방직회사를 설립 과정에 참여하여 돈 벌 궁리뿐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개화파라는 이름이 얼마나 민족적 실체가 없는 허상인지,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얼마나 기막히게 미화된 것인지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렇듯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지도부가 구성되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민족대표도 33인으로 결정되었다. 천도교에서는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최린, 이종일, 박준승, 나인협, 임예환, 이종훈, 권병덕, 양한묵, 김완규, 홍기조, 홍병기, 나용환 등 15명이었고, 기독교에서는 예정보다 1명이 늘어난 16명으로 이승훈, 양전백, 이명룡, 유여대, 김병조, 길선주, 신홍식, 박희도, 오화영, 정춘수, 이갑성, 최성모, 김창준, 이필주, 박동완, 신석구 등이었다. 또한 불교에서는 한용운, 백용성 등 2명이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