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우리는 오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약속했습니다.

1997년 4월 영국, 서점과 신문 판매대에 2파운드짜리 작은 책자 하나가 깔렸다. 어떤 정책을, 언제까지, 어떻게 재정을 마련하고 시행할 것인지를 적은 노동당 토니 블레어의 매니페스토다. 선거 전에는 국민이 정당이나 정치인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당선 후에는 그들이 공약을 잘 지키고 있는가를 평가하고 검증하는 기준이 되는 매니페스토.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5·31 지방선거 때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가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교육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실패한 경제와 사회 분야 지출을 줄이고 교육 분야에 지출을 늘릴 것이다. -> 연간 1억 8,000만 파운드가 소요되는 엘리트 교육제도를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5·6·7세 아동의 학급 규모를 30명 이하로 줄인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고 어떤 정책을 수행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토니 블레어의 1997년 매니페스토. 자세한 재원 마련 방법은 유권자의 높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25만 명의 청년실업자에게 복지혜택을 중단하고 직장을 구하도록 한다.
-민간 부분에 취직시킨다. -비영리 봉사활동자로서 취직시킨다. -자격취득을 위한 전일제 학습을 실시한다. -노동당 시민 서비스 프로그램과 관련된 환경프로젝트팀과 일하게 한다.

정책을 어떻게 실현해낼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물론 실현에 대한 단호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노동당은 다양한 지지계층과 직능별 집단의 민의를 수렴하는 정책기구들이 장기간의 토론을 통해 교차확인하면서 신중하게 매니페스토를 만든다.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을 끝내고 당시 마흔 초반의 토니블레어를 수상에 올리는 쾌거를 이뤄낸 1997년산 매니페스토. 2파운드의 유료 선거공약집이 무려 100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이때만 잘 팔렸냐고? 영국 국민의 절반은 매니페스토를 ‘제대로’ 읽는다. 국민 스스로 정치 관심이 나라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고 있다. (매니페스토 판매 수익금은 각 정당의 선거 자금으로 활용된다.)

수년전 선거를 앞두고 방송에서 다뤘던 아이템이 생각나 몇 자 적어본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 소식에 씁쓸하던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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