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범(수필가, 전 교육공무원)

내포문화연구원이 주관하는 142차 역사기행이 있는 날이다. 이른 아침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 관광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나갔다.  엊그제만 해도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는데 빠른 걸음을 재촉해서인가 콧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완연한 봄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 시골집 울타리와 동네 개울가에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온 산하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꽃이 우리를 곧 반길 것 같다.

고속버스는 면천 IC를 진입하여 대전당진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공주 IC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로 경로를 바꿨고 다시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익산 IC를 빠져나와 목적지로 향했다. 오늘의 답사 여정은 삼례문화예술촌, 익산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보석박물관 순으로 예정하였다.
관광버스는 2시간동안 질주하여 첫 답사지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에 도착하였다.
“무슨 문화예술촌이 이렇게 생겼어?” 첫눈에 들어온 건, 말 그대로 무뚝뚝하게 생긴 창고 몇 동이었다. 1970∼80년대까지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목재창고였다. 시커먼 벽에는 ‘협동생산 공동판매’ ‘삼례농협창고’ 같은 글씨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농협에서 비료와 쌀 창고로 쓰던 것을 개조하여 문화예술촌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모두 여섯 곳의 문화예술공간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먼저 찾은 곳이 VM(Visual Media)아트미술관. 문을 밀고 들어서면서 눈이 저절로 크게 떠졌다. 창고 그대로의 외관을 배신이라도 하듯 ‘첨단 예술’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재료로 만들었다는 정크아트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창고 건물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듯이, 일회용 빨대나 링거줄 같은 쓰레기들이 작품으로 변신했다. 인터랙티브 아트라는 물 속 체험도 신기했다.
두 번째 찾은 곳은 책박물관. 상설전시 공간에 ‘한국 북디자인 100년’을 주제로 1883년부터 1983년까지 출판된 책을 전시해 놓았다. 북디자이너가 별도로 없던 시절, 화가들이 그린 책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김환기가 디자인을 했다. 30년간 교과서 삽화를 그린 김태형 작가 코너에서는 오래 잊고 있었던 ‘철수와 영희’를 만날 수 있었다.

다음 세 번째 찾은 김상림 목공소에는 조선 목수들의 철학이 스며있는 나무가구를 재현해 놓은 것은 물론 각종 연장을 전시해 놓았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짙은 나무 향이 오래 그리워하던 고향 소식을 들은 듯 왈칵 반가웠다. 전시해 놓은 작품들은 우쭐거리지 않고 담백한 느낌이라 마음이 편안했다.
오래된 것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소통해서 친구가 된다. 마당 곳곳에 설치한 조형물도 원래 거기 있었던 듯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봄바람처럼 느긋해진 몸과 마음으로,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 사이를 거닐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남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 위의 모든 것들은 하나로 이어져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고통의 시대가 남긴 유산과 이 시대의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삼례문화예술촌에서 그 증거를 보았다.
 
아침 식사를 평소보다 일찍 해서 인가?  점심때가 채 되지 않았는데 배가 고파왔다. 삼례문화예술촌에서 바로 길 건너에 ‘새참수레’ 간판이 걸린 뷔페식당으로 안내 하였다.  65세 이상의 할머니들이 조리한 음식인데 정갈하고 구색을 갖춘 맛깔스런 음식점이었다.

다음 답사 코스는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위치한 익산 왕궁리유적이다. 왕궁리유적은 백제 왕실이 수도 사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  1976년 이후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고고학적 조사를 통하여 그 전모가 확인되었다. 백제시대 왕궁관련 시설, 금과 유리 등을 생산하는 공방시설, 사찰로 구성되어 있었다. 왕궁관련 시설은 장방형의 석축 궁장을 비롯하여 동서석축, 건물지등이다. 특히 정전으로 추정되는 대형건물지가 발견되어 백제 왕궁 구조 및 공간구획의 원리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부여의 관북리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규모와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왕궁은 뒤에 그 기능이 사찰로 바뀌었는데, 사찰로 기능이 바뀌는 시기는 백제 말기(7세기 중엽)~통일신라 초기(7세기 후엽)라고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오층석탑이 이를 보여준다. 북서쪽 가까운 곳에 미륵사지가 있으며, 주변에 미륵산성을 포함해서 10여개의 성이 있었던 것을 보아 왕궁리에 있는 궁궐을 내성삼아 보호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사문화실에서는 백제 무왕이 창건한 호국사찰 미륵사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 속에서 백제 사리장엄의례와 화려하고 완숙한 금속공예기술의 정수를 볼 수 있었다.

호남 사람들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삼례문화예술촌과 부여, 공주에 이어 백제문화를 꽃피웠던 익산 백제왕궁, 미륵사지는 같은 백제문화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신선함과 정겨움을 주었던 고적 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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