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갱님, 다...당황하셨어요?
고갱님, 다...당황하셨어요?
  • 이선우 객원기자
  • 승인 2018.03.12 10:04
  • 호수 11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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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진짜 일 수도 있잖아?
1그램 정도의 불안감 때문에 고민하는 순간,
사기범은 예정된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지인들과 찾아간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막 나오고 있었다. 지난 몇날 며칠 잠 못 이룰 충격과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는 중이었다. 저장되지 않은, 처음 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건 그 순간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음으로 눌러버리고 받지 않았을 텐데 하필 기다리던 택배가 있던 참이었다. 택배기사님이려니 생각하고 무심히 받았는데 다짜고짜 이름부터 확인한다.

“이선우씨 맞습니까?”
“네”
“여기는 서울중앙지검입니다.”
“네?!”

경찰 친구도 있고, 경찰청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하고 있지만 검찰청은커녕 동네 파출소에도 가 본 적 없는 나에게 서울중앙지검이라니. 괜히 사람 작아지게 만드는 검찰청 사칭 멘트다.

“불법도박사이트 운영자 000을 검거했는데 검거현장에서 이선우씨의 통장이 발견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그럼 그렇지. 바로 끊을까 하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들어볼까 0.1초쯤 생각했다. 사기꾼이구나 생각하면서도 바로 끊지 못했던 건 070이 아닌 010 일반 번호였기 때문이다. 혹시 진짜 일 수도 있잖아?  1그램 정도의 불안감 때문에 고민하는 순간, 사기범은 예정된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이선우님의 신*은행, 국*은행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연루되어있습니다.”
“아... 네.”

만들기는 했지만 사용하지 않는 두 은행의 통장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문득 몇 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금천경찰서 사이버수사대였다. 어떤 사이트에서 이미지 도용 판매자로 신고 당했다는 내용이다. 전화번호를 대면서 아는 번호냐, 이름을 대면서 아는 사람이냐 묻더니 니 이름은 뭐냐고 묻는다. 친절히 내 입으로 내 이름을 이야기 해주며 누가 내 전화번호를 도용했나, 번호를 바꿔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신랑에게 이야기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너같은 애들이 보이스피싱에 딱 걸리지.”

기분이 상해서 걸려왔던 그 번호로 전화를 했으나 받질 않았다. 잠시 후 전화가 걸려와 신고한 사람과 연락중이며, 이 전화는 공용폰이니 직통번호를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를 영 답답하게 생각하던 남편이 전화를 가로채 언성을 높였다. 나는 옆에서 진짜 경찰이면 어쩌냐고, 오히려 남편에게 눈을 흘겼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시간쯤 지났을까. 더 이상의 전화는 없었고 남편이 찾은 보이스피싱 녹음 사례를 들으며 저녁밥을 먹었다. 찝찝한 기분이 풀리지 않아 경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돌아온 건 처절한 놀림뿐. 전 국민이 다 받는 그 전화를 이제야 받았구나~ 깔깔깔. 그 일이 있고 몇 달 뒤, 명절을 앞두고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노린 대출빙자 보이스피싱 주의를 당부하는 아이템으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수법은 지능화되고 1인당 피해금액도 고액화 되고 있으니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각별한 유의라... 방송은 그렇게 했지만 일상 속에서 속이려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을 어찌 당해낼 수 있을까.

만천하에 까발려지는 권력자들의 부조리함에 치가 떨리는 이 마당에 일용직 노동자의 가벼운 통장을 털어가려는 보이스피싱이라니. 참 피곤하고 험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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