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범/수필가, 전 교육공무원

평창의 17일은 뜨겁고 행복했다. 세계의 시선이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 평창에 쏠린 가운데 2018년 평창올림픽이 지난달 25일 막을 내렸다. 92개국 2920명의 선수가 참가해 저마다의 기량을 마음껏 뽐낸 평창 겨울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가 하나될 수 있음을 웅변으로 보여준 한편의 드라마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대한민국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나라로 나아가는 또 다른 여정을 시작했다.

‘미래의 물결’을 주제로 펼쳐진 폐막식 공연은 케이팝(K-POP) 공연과 라이브 드론쇼, 전통음악 등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무대였다. 스타디움의 성화가 꺼지고 다시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불빛이 아로새겨질 때 아쉬움 속에서도 또 다른 시작을 기약하는 희망을 보는 듯했다. 특히 개막식 공동입장에 이어 폐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각각 태극기와 인공기, 그리고 한반도기를 들고 자유롭게 함께 입장하는 모습은 이번 올림픽의 백미였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 무슨 낙으로 사느냐”는 푸념 아닌 푸념마저 들린다. 현장 관람석에서 혹은 텔레비전 앞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평창을 뜨겁게 응원했다. 모처럼 국민을 하나로 묶어 준 것 말고도 이번 올림픽의 의미는 각별하다.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러웠던 우리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격려의 장이 됐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비인기 종목에서 빛나는 투혼으로 개가를 올린 주역은 다름 아닌 우리 젊은이들이었다. 의성 마늘소녀들의 컬링, 스켈레톤, 봅슬레이, 스노보드 등에서의 예상 밖 쾌거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모두의 생각을 크게 바꾸는 반전이었다.

불모지로 잊혀진 분야에서 이들의 쾌거는 어떤 메달보다 값진 보석이었다. 기죽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젊은 선수들의 패기는 실업으로 위축된 청년세대에 희망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 조금만 관심을 쏟아 줘도 청년들의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성세대는 새삼 각성했다.

평창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우리나라가 다시 치른 지구촌 잔치였다. 한 세대를 건너 우리 안의 크고 작은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일사불란한 국가 주도의 보여 주기식 무대가 아니라 국민 스스로 참여하고 즐긴 축제였다. 막연한 애국심에 스포츠 정신을 퇴색시키지 않았으며 메달 수와 순위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혹한 속에서도 1만 6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잔칫집의 주인으로 묵묵히 마지막 순간까지 행사를 빛냈다

평창 올림픽에 이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계속됐던 터라 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일부 국가는 대회 참가를 망설였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도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동계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선수들이 참가했던  평창 올림픽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다진 스포츠제전이 됐다. 대회 운영도 나무랄 데 없었다. 외신들도 “흠잡을 것 없는 게 흠”이라고 호평했다. 입장권 판매율은 목표치를 웃돌았고, 경기장을 찾은 관람객은 133만여명에 달했다.

문제는 올림픽 이후다. 스포츠 내적으로는 올림픽 시설이 경기 후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되는 방안, 비인기 종목에 대한 반짝 열기 아닌 지속적인 투자 등이 필요하다. 올림픽을 치르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일부 해외 도시처럼 돼서는 곤란하다. 여자 팀추월 팀처럼 고질적인 파벌싸움으로 어린 선수들이 희생양이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게 체육계의 악습도 끊어내야 한다.

스포츠 외적으로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화합의 분위기가 진정한 한반도 평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올림픽에는 남북 단일팀 결성과 북한예술단·응원단 파견, 김여정·김영철 방남 등 여러 정치적 카드가 동원됐다. 북핵이라는 상존하는 위험을 애써 눈감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북측에 끌려다닌다는 비판과 함께 남남갈등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림픽 후 한반도의 진정한 긴장완화가 없다면 ‘평창의 평화’는 북한의 위장 공세에 불과했음을 우리는 직시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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