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힘겹게 이야기하는 한 여성 검사의 뉴스 토크를 보며 참을 수 없는 오심을 느꼈다. 성범죄를 단죄하고 죄 지은 자를 처벌해야 마땅한 사람들이 성추행을 일삼는 것도 모자라 동료 선후배라고 눈감아주다니, 그것도 남자에 한해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진짜 그렇다고,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조차도 어쩌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여기도 그런데 거기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 같아 맥이 빠지기도 했다.

방송국에서도 그런 일은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아, 이걸 다행이라고 써야하나…) 나는 직접적으로 그런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후배 작가가 함께 출장 갔던 스텝 중 한 명과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배에게 이야기를 듣고 담당 피디에게 그 사실을 알렸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술 마시고 일어난 일이지 않느냐, 일방적인 잘못이겠느냐는 반문. 정확한 문장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강의 요지는 그랬다. 몇 차례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같은 말이 되풀이됐다. 더이상 밀어붙이지 못하고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바위에 달걀 던지는 꼴이 되겠구나 싶어 오히려 후배 작가를 달랬다. 힘없는 선배였고 방관자였던 그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자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죄책감이 밀려든다.

철저한 권력관계에서 약자의 입장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당하고 마는 성폭력. 그것은 장소나 상황만 다를 뿐 사회 곳곳에서 난무하고 있다. 학부 시절 성추문으로 악명 높던 모 교수가 최근 한 문인단체의 새회장으로 선출돼 동문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등단하고 싶으면 그 분께 인사가라’는 말이 지금도 통한다 하니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문단의 괴물, 시인 고은에 이어 연극계 괴물인 이윤택의 희롱과 추행을 넘어선 성폭행을 고발하는 이야기는 참담함에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다. ‘극단 내에서 18년 가까이 진행된, 관습적으로 일어난 아주 나쁜 행태’라 말하는, 힘을 가진 자를 위한 조직적인 은폐와 용인이 작동하는 거대한 폭력의 시스템이 이렇게 지금도 건재하구나! 재수 없게 걸린 사람처럼 변명하기 바쁘고 불쌍한 척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일상화된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난해 당진의 양성평등주간 기념식 이야기가 나왔다. 여성단체인들 앞에 나선 연사의 “여자치마와 연설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인사말을 듣고 귀를 의심하며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는 회고가 이어졌다.

시대를 초월해 내려온 성차별과 모순이 키워낸 괴물, ‘성’이 희롱과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건 분노를 넘어 슬픈 일이다. 지위고하, 세대를 막론하고 세상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건 비극에 가깝다. 그렇기에 이것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딸도 잘 키워야 하지만 아들도 잘 키워내야 하는 문제,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반성하고 공감하며 풀어가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다. 침묵을 깬 그녀들의 용기에 마음 깊은 위로와 지지를 보낸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