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유언
아버님의 유언
  • 당진신문
  • 승인 2018.02.10 16:02
  • 호수 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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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범(수필가/전 교육공무원)

외출할 일이 있어 무장하듯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건만 찬바람이 여간 아니다. 나도 나이를 먹은 탓인가. 요즘 들어 전에 없이 추위를 탄다. 올 겨울이 예년에 비해 무척 춥다고 한다. 이제 며칠 있으면 우리 고유의 명절 설이다. 명절을 맞을 때마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마음 한 편에 한으로 남아 있다.

유년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밤늦게 부엌에서 밤참을 준비하시더니, 내게 논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두레박으로 물을 푸고 계셨다. 나는 석유등잔이 들어 있는 등을 들고 앞장을 섰다.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드실 밤참을 머리에 이고 따라오셨다. 집을 나서서 얼마만큼 가고 있었다. 멀리서 두레박으로 물 푸는 소리가 철썩 철썩 들려왔다.

좁은 논두렁길을 조심스럽게 걸어서 아버님이 일하시는 곳에 도착하였다. 아버님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두레질을 하고 계셨다. 어머님은 준비해 온 밤참을 머리에서 내려놓고 자리를 펴셨다. 완두콩이 들어 있는 쌀밥이며, 고추장 발라 구운 실치포와 열무김치 등이 차려졌다. 이윽고 아버지는 하시던 일을 멈추고 밤참을 드셨다. 얼마나 시장하셨을까. 금방이라도 비울 듯이 밥을 맛있게 드셨다. 그런데 아버님은 반쯤 드시고 슬며시 수저를 놓으셨다. 옆에 앉아 있는 아들을 위해서 한 그릇의 밥을 다 드시지 않고 남기신 것이다.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을 적신다. 

당신께서는 배우지 못한 일을 항상 한으로 여기셨다. 장남인 나한테 “너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학까지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렇게 자식 대학 보내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시며 밤을 낮 삼아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어린 마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당시 우리 집 형편으론 중학교 졸업하는 것만도 언감생심이었다. 고등학교 진학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그런데 그 당시 막내 외삼촌이 공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외할머님이 그 곳에 계시면서 밥을 해주고 계셨다. 외할머님의 권유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집안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주에서 교육대학에 들어간 연유로 40여 년 간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다.

학창시절, 자식을 먼 곳에 유학 보내놓고 밤낮 없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다. 공주에서의 5년 동안의 생활은 암담함 그대로였다. 가정형편을 생각하여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막막한 학창생활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고난과 역경은 돈으로도 못 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희망의 날이 오리라는 실낱 같은 희망이 나로 하여금 어려움을 견디게 하여 주었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단에 섰다. 이제는 작은 부분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집에서 가까운 모교에서 근무하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 자랑을 무척이나 하셨다. 자식 자랑을 하시며 아버님께서 흐뭇해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자식 대학 보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셨던 아버님께서는 평소에 즐기시던 술로 인해서 회갑을 넘기시고 간경화로 유명을 달리하셨다. 지금도 나의 학창시절 온갖 어려움을 감내하시며 오직 자식 공부하는데 뒷바라지 하시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셨던 아버님을 떠올린다. 하지만 당신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게 한恨으로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아 간혹 먹먹해 하곤 한다.

아버님은 운명하시며 그렇게 정 좋게 사시던 어머님을 남은 여생 잘 모시라고 유언처럼 아들에게 당부하셨다. 그 말씀을 되뇌이며 지금도 어머님을 모시고 있다. 어느덧 어머니 연세가 구순이시다. 90세를 졸수卒壽라고 하던가. 돌아가실 나이가 됐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건강도 옛날 같지 않다. 허리가 굽고 약간의 치매기도 있으시다. 모처럼 오는 손자손녀들도 할머니를 옛날처럼 대하지 않는다. 동생들조차도 명절 때 모이면 어머님을 요양시설로 모시자고 한다. 그럴때마다 서운한 감정도 없지 않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모시겠다.’고 다짐을 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에 다하지 못한 효를 아쉬워하며 후회하는 어리석은 자식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불교의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이르길, “부모는 목숨이 있는 동안 자식의 몸을 대신하길 원하고, 돌아가신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길 원한다.”고 했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리라. 그렇다. 효를 실천한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감수하고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마땅하리라. 그 길이 아버님께 못 다한 효를 행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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