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환 전 당진시장

충청남도 최서북단에 위치한 조그마한 시골마을 당진, 바로 이 당진이 한국천주교 신앙의 현장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천주교 최초의 김대건 신부(1821-1846년)이며 그의 고향이 바로 당진군(면천면), 현재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선 천주교의 요람이요 한국 천주교의 수도가 바로 당진이라고 그 가치를 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해마다 9월20일이 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는 순교성인 김대건을 특별히 기념하며 이날을 그의 축일로 지내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1년이면 탄신 200주년 기념일이 되기도 한다. 또한 우리 당진은 역사적으로 왕권의 보호를 받은 문화나 유적은 없으나 김대건 신부를 통해 종교 문화적 근성이 흐르고 있음은 이것 또한 당진의 귀한 자산이요 가치인 것이다. 참으로 당진인 것이 세계적 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1984년 교황 바오르2세가 한국 방문 시 김포공황에 내리시면서 일성으로 “거룩한 순교자의 땅이여” 라고 외치시며 엎드려 입맞춤을 하셨던 당시의 모습이 세계의 언론 매체를 통해 방영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으며 2014. 8월에는 프란체스코 교황께서 당진 아시아 청년 대회 참석을 위해 방문 했으니 얼마나 한국과 당진이 거룩한 땅이던가?

2013년 필자가 당진시장 재임 시 유흥식 대전 교구청 주교님께서 아시아 청년 대회를 충남에서 모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있어 준비도 없이 당진이 한국 천주교의 수도이니 당진에서 행사를 유치하고 교황님을 모셨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하고 주교님과 중앙부처에 국비 지원요청을 하면서 솔뫼 성지 정비사업을 했던 일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014, 8월 행사는 성대히 마치고, 당진에서 서산해미읍성 순교지를 다녀 가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목적지 당진보다 경유지인 서산이 주말마다 순례객이 많이 다녀 간다고 하니 자칫 교황님 다녀가신 역사적 기억을 잊혀질까 염려된다. 당진으로서는 세계적 종교사 기록으로 남겨지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성지인 당진이 한국천주교에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

합덕 성당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1929년 제7대 주임 폐넬 신부가 합덕 성당을 고딕식 건축물로 건립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퀴를리에 신부가 합덕 본당으로 이전하고 파리에서 자금을 들여와 합덕 성당 주변 평야 50여만평 토지를 구입하여 소작농을 줌으로서 자연스럽게 교유촌이 형성 되었다. 이 소작농에서 모아지는 자금은 충청지역 성당뿐만 아니라 1898년 명동성당의 신축 자금까지 관여 하였다고 하니 오늘의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이고 종주지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2010년 당진의 제40대 군수로 취임하여 천주교 역사를 살피던 중 1845년 김대건 신부께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어 함께 데리고 왔던 다불류 신부 유적지인 합덕 신리 성지가 있어 2014년 까지 총 34억원을 투입하여 기념관과 역사 공원을 조성하여 솔뫼성지, 합덕성당, 신리성지를 천주교의 요람지로 완성 된 것을 큰 의미로 삼고 있다.

김대건 신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본래 김대건 신부는 본관은 김해이며 세례명은 안드레아로 택하였고 아명은 재복 이였으나 대건(大建)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증조부때 부터 4대가 천주교를 믿었다. 1836년 조선 교회는 프랑스 모방신부를 맞이했고 소년 김대건의 총명함과 사람 되기를 어여삐보아 성직자 후보로 선택 하였다. 그 뒤 마카오에서 신학교육을 받고, 1845년 다시 상해로 건너가 그곳 성당에서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았다. 이로서 조선인으로서는 첫 신부가 되어 한국에 들어와 조선 교회의 재건을 시도했고, 1846년 선교사 영입을 위해 백령도까지 갔으나 이 행보가 그의 마지막 길이였다. 그는 관헌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았고 3개월여 옥살이와 재판 끝에 반역죄가 적용되어 1846.9.16일 새남터(서울 용산구 한강변)에서 군문효수의 최고형을 받아 순교했다. 이것이 25세 때의 일이다. 그는 짧고 굵은 삶을 살아왔다.

신부 김대건은 하느님에 대한 지극한 효애 정신을 강조했고 부모에 대한 효성을 잊지 않았던 영락 없는 당진인과 조선인의 크리스찬 이였다. 그의 순교성인으로 받들기 위한 노력은 일찍 시작 되었으나 1백년 이상 걸린 노력과 기다림 끝에 1984년 한국을 방문하신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 됨으로써 그는 세계 교회에 우뚝서 세계인의 존경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를 기념하는 성당이 아프리카 케냐에도 있고 베트남이나 파푸아뉴기니 같은 지역에도 있다 하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를 기념하는 여러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진 솔뫼 성지는 승리자 김안드레아의 변함없는 고향이고 한국 천주교의 수도 1번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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