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보다 ‘몰랐던 나’를

비로소 알게 된 깨달음이 더 크다.

당진에 내려와 살기로 결정하면서 거의 포기했던 방송작가라는 직업. 혹시 하는 마음에 집은 터미널 근처에 얻었지만 돌쟁이 아이를 떼놓고 일터인 서울을 오갈 수 있을까 한숨이 깊었다. 당진에 내려온 지 석 달쯤 지났을까. 큰아이의 돌잔치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토록이나 갈망했던 <지식채널e> 프로그램에서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혼자였다면 고민이라고는 1도 없이 시작했을 테지만 ‘지방에 사는’ ‘아기 엄마’가 해내기엔 꽤 버거운 프로그램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급히 알아본 어린이집에, 우는 아이를 억지로 들여보내며 아침마다 눈물바람으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아이 아빠의 출퇴근 스케줄을 확인하며 친정엄마에게 콜을 하는 일도 꼼꼼하게 챙겨야 했다. 누구에게도 도움 받을 길이 없을 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피디나 다른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당진행 버스를 타기위해 헐레벌떡 터미널로 뛰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면 똑같이 해낼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채널e>는 그간의 작가생활을 돌아볼 때 나에게 가장 큰 깨달음을 준  프로그램이라 생각된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호기심을 채워주는 지식을 캐내면서, 배우고 알아가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한편으로는 알면 알수록 마음이 먹먹하고 불편한 사실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토록이나 모르고 살아왔는지,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도 했다.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보다 ‘몰랐던 나’를 비로소 알게 된 깨달음이 더 크다. 지색채널e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과 더불어 ‘몰랐던 나’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의 병폐는 모르면서도 스스로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에는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그러므로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죽게 하는 일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중에서

노자는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병이라고 했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 이 말장난 같은 말이 얼마나 큰 위험을 안고 있는지 우리는 지난 정권을 겪으면서 충분히 깨달았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도록하기 위해 언론이 먼저 나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어떤 기사거리를 어떻게 알리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사거리를 제외한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니 언론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소외된 부분에 관심을 갖고 알 수 있도록,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 2018년의 당진신문이 당진시민에게 있어 그러한 창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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