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선(세한대학교 경찰소방대학장)

 

필자가 고교생이던 1980년대 초에는 쌀 한가마니가 5만 5000원 내외였으니, 한 분기 등록금을 납부할 수 있었다. 대전에서의 하숙비도 쌀 한가마니면 해결이 가능했다. 그런데 37년이 지난 지금엔 쌀 한가마니는 고사하고 4가마니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쌀 전업농의 소득이 30 여년 만에 1/4이나 고스란히 감소한 셈이다.
 
이처럼 농업인들의 삶은 세월이 흐를수록 힘겨워진다. 당진 또한 국내 최고의 쌀 생산지라지만 쌀 소비가 감소하면서 앞으로 쌀값은 30% 이상 더 하락할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제기되는가 하면, 일부 농협은 야적이라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정도로 마땅한 판매처도 확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쌀 생산량을 현재의 80%에서 50%까지 크게 감축시켜야 된다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삽교천 용수의 수질마저 농업용수로 적합한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힘들여 재배한 채소 등 농산물마저 대형 마트들이 농수산물 시장을 지배하면서 전통시장의 활력을 잃게 만들고 있다. 농업인들이나 전통시장 상인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이유다.

90년대 5만 7천 여 명에 이르던 당진시의 농업인 인구는 무려 40%나 감소하여 3만 5천여 명이라고 한다. 대부분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1ha 미만의 농지를 생계수단으로 경작하는 영세농이어서 농촌경제를 바꿔 나가기 위한 시도들도 성공하기에는 힘겨워 보인다. 농업회사나 조합 형태의 규모생산체제로 전환시켜 ‘친환경 고품질 농산물 생산, 지역순환 식품체계 구축, 도농교류 활성화’ 등 체계적인 지원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는 깨어있는 농업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지역사회의 의지가 모아져야 가능한 일이리라.

전문가들은 농촌경제를 되살리는 모범사례로 선진 낙농국가인 덴마크를 들곤 한다. 거센 바람과 모래벌판뿐이었던 덴마크가 오늘날 세계적인 낙농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3가지 운동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선, 니콜라이 그룬트비라는 목사가 농민학교를 만들어 ‘농민이 깨어나야 좋은 사회,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의식개혁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덴마크는 1864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 패배하여 국민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는 호소로 농업인들을 감동시켜 많은 농업인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둘째, 토목장교 출신인 엔리코 달가스는 모래 땅위에 나무를 심어 전 국토를 푸른빛으로 바꾸는 국토개간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였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강한 의지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좌우명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깨어 있는 국민들이 합심하여 낙농협동조합 운동을 전개하여 세계적인 낙농국가로 발돋움한 것이다.

당시 덴마크의 주요 농작물은 보리, 밀, 귀리 등 곡물류 중심이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곡물 수입에 밀려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이에 정부와 시민단체에서는 농업을 곡물생산에서 낙농제품 생산 위주로 전환시켜 나갈 것을 권유하면서 낙농협동조합이 붐을 형성하게 되었다. 협동조합이 단순한 협동운동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을 활용하여 질 좋은 농산물 생산을 위한 각종 아이디어까지 내놓게 되었다. 

현재 덴마크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의 약 85%가 해외로 수출된다고 한다. 오늘날 파리와 런던,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소비되는 햄 제품 가운데 가장 고급품인 살라미는 덴마크의 특산품이다. 일본에 팔리는 최고급 돈가스용 고기 역시 덴마크산이다. 비단 돼지고기뿐 아니라 모든 식품의 안전과 청결을 위해 생산에서 수출과정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에 걸쳐 지정된 연구소나 검사기관의 검사를 반복적으로 받게 하고 있다.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농축산물만이 붉은색의 덴마크 상징 로고를 부착할 수 있는 것이다.
 
축산 배설물 저장시설 설치의 의무화, 배설물 배출을 위한 농지확보 기준을(예를 들어 젖소 2.1마리당 농지 1ha) 설정하여 친환경 유기농생산체제로 전환시켜 나갔다. 이와 같은 협동조합의 운영과 엄격한 사육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덴마크를 세계적인 낙농국가로 만든 것이다.

어쩌면 90년대 까지 당진은 조용한 농어촌 마을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수도권과는 1시간 생활권으로 편입되었고, 당진항만, 당진산업단지 등이 속속 건설되면서 도농복합도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외부 유입 인구까지 급격히 증가하면서 수도권의 도시들처럼 성장잠재력과 입지를 갖춘 것이다. 그럼에도 농촌경제가 더욱 어렵게 되면서 지역경제는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도농복합도시로 발전해 나가는 걸림돌을 제거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나서야 한다.

예를 들어 당진화력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를 활용하는 유리온실을 건설한다면 에너지 비용을 75%나 절감함으로써 유기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산물판매에는 유통비용이 48%, 에너지 비용이 30%를 부담해야 된다고 한다. 그런데 화력발전의 온배수를 활용하여 에너지 비용을 절감하고 수도권에 살고 있는 출향민 42만명을 포함한 효과적인 저비용 판매망을 구축한다면, 당진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농촌경제를 되살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소득 증대사업을 기반으로 품질 좋은 쌀을 생산해내고, 장고항의 활력을 되찾는 정책이 더해진다면, 당진경제는 선순환경제체제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첨단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기술을 농업에 접목시키는 ‘스마트 팜’이 붐을 형성하고 있다. 당진의 농촌에서도 이런 기술을 도입한다면 유기농산물을 대량 생산하여 적기에 판매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 결국 당진은 시청을 비롯한 관계기관 및 단체, 농업인들이 함께 지혜를 모으고 합심하여 21세기형 스마트 팜을 육성하는 방법으로 농촌경제를 재건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당진시가 도농복합도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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