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화 / 편집위원, 민속지리학 박사, 충청남도문화재전문위원, (사)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중요무형문화재 75호 기지시 줄다리기와 관련하여

2,3편의 전설이 전해온다.


송악면 기지시리 인접 동편의 야산을 국사봉 혹은 국수봉이라 부른다.
산 정상에는 국사봉 정자가 있고 수백 년 묵은 괴목(槐木)이 한 수 우뚝 서 있다. 이 괴목은 당목으로 당진군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마을의 진산에 국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는 토속신앙이 널리 퍼졌는데 이때부터 국사당이 있는 산을 국사봉, 국수봉으로 불렀다 한다.
이 국사봉에는 아래와 같은 아름다운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아주 옛날 이곳 틀못시는 한진 나루를 통하여 한양(서울)을 왕래하는 길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꽤 활발하게 장사가 이루어졌다 한다.


따라서 산천경개를 돌아보며 다니는 풍류객들이나 풍수지리설에 관심이 있는 풍사(지관)들이 이곳에 들러서는 국사봉 정상에 올라가 틀못시의 지세 경관을 보곤 했다.
그 때에 한 선비가 청운의 꿈을 품고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여 한양에 올라가 과거를 보았으나 불운하게도 빈번히 낙방하여 눈물을 머금고 귀양하던 차에 틀못시 국사봉에 올라 주위 지세를 구경하다가 피로한 끝에 깜박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큰 구렁이와 지네가 공중에 나타나 서로 뒤엉키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다가 끝내 둘이서 죽어서 땅에 떨어졌다. 이 때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가 나타나 춤을 추며 하는 말이
“이곳에서 해마다 당제를 지내고 줄을 다려야 과거에 급제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며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다.”
는 것이었다.


꿈을 깨고 보니 하도 괴이하게 생각 들어 하산하는 즉시로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꿈을 국사봉의 신령이 내린 계시로 생각하여 받들기로 하였으며 이때부터 더욱 정성을 다하여 줄을 성대히 다리었다 한다.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주(祭酒)를 담그게 되는데 이 제주는 국사봉의 산정에다 아무도 모르게 땅을 깊이 파고 술 항아리를 묻어 백일주(百日酒)를 만들게 된다.
어느 날 우직한 농부 한 사람이 국사봉에 나무를 하러 올라갔다가 제주 묻은 곳을 알아내어 땅을 파 헤치고 향기가 코를 찌르는 백일주(百日酒)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원래 술을 좋아하던 농부는 정신없이 퍼 마시었다. 그 후부터 이 농부는 정신 이상증세를 일으켜 논밭으로 날뛰며 이상한 소리와 망령된 짓을 다하고 다녀서 마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마을사람들이 협력하여 좋은 약을 구해다 쓰고, 침을 놓는 등 온갖 치료를 해도 낫지 않아 이것은 필시 국사봉 신령의 노여움에서 비롯된 병이라고 단정 짓고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기 시작하자 2~3주 후에 나았다. 그 후 마을사람들은 국사봉 산신령의 노여움을 살까봐 지성을 다해서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


또 다른 전설은 옛날 이곳 틀못시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이 선비가 과거에 급제하기 위해서 매번 공부했지만 낙방을 거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부한 문제는 시험에 한 문제도 안 나오고 공부한 문제가 나와도 시험 답안을 쓰려면 모조리 잊어 버려 답을 쓸 수가 없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시험을 마치고 나면 잊었던 답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이렇게 다섯 번이나 낙방되자 선비는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살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 틀못시 동쪽 국사봉에서 한줄기 구름이 어슴푸레 감돌더니 곧 선비 앞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그 구름은 용으로 변하여 선비를 똑바로 내려다보았다. 선비가 무서워 몸을 움츠리자 용은 선비에게 놀라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그대는 놀라지 말라. 과거를 볼 때마다 낙방하는 것은 국사봉에 사는 천년 묵은 지네가 승천을 하지 못해서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하는 대로 하라. 정월 대보름날 밤에 국사봉에 가면 가지 없는 죽은 나무에 꽃이 피어있고 자정이 되면 예쁜 아가씨가 그 나무 밑에서 나올 것이다. 그 아가씨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면 재빠르게 그대는 그 꽃에 불을 붙이고 그 여자의 입속에 불을 붙인 꽃을 넣은 다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내려오라.”고 말하고는 용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선비가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해 정월 대보름날 선비는 꿈에서 용이 시킨 대로 국사봉으로 올라갔다. 달이 휘영청 밝아 가지 없는 죽은 나무를 쉽게 찾았다.


자정이 되자 이윽고 그 꽃 속에서 예쁜 아가씨가 나와서 선비를 보고는 집으로 가자고 했다.
선비는 용이 시킨 대로 그대로 하고는 급히 집으로 돌아와 문틈으로 국사봉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예쁜 아가씨는 어디에도 없고 그 자리에 커다란 구렁이와 지네가 엉켜 싸우고 있었다.


구렁이와 지네가 엎치락뒤치락 싸우다 결국 지네가 죽었다.
그날 밤 용이 다시 나타나서 하는 말이 “지네는 죽었지만 죽은 지네의 남편이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이니, 지네 모양의 밧줄을 만들어 2,3년마다 한 번씩 줄다리기를 하면 지네가 힘을 쓰지 못하여 과거에 급제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한다. 그 후부터 틀못시에는 2,3년마다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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