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사)面(면)楚(초)歌(가)
사방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옴(누구한테도 도움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상황)


원래 한신은 초나라 항우의 부하였다. 한신은 韓(한)나라 사람인 장량의 천거로 漢(한)나라 유방의 부하가 된 것이다.


초나라의 항우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한 후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항우는 ‘남자가 천하를 얻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錦衣夜行(금의야행)이라는 고사가 여기에서 나왔다)하고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으로 철군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장량과 진평은 유방에게 지금 추격을 하여 항우를 공격할 것을 진언하였다.
초나라의 군대는 해하에 진을 치고 있었다. 한신의 한나라 군대는 초나라의 진영을 겹겹이 포위하고 한밤중에 장량의 심리작전을 통하여 온 사방에서 초나라 진영에 대고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초나라 군사들은 항우가 23세 때 강동강을 떠날 때 같이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근 십여년 동안 고향의 소식을 접할 길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요, 처자식과 부모형제가 살아 있는지 조차 알지를 못아였던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항우는 “아니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 했다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가?”하면서 이젠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하고 강개하여 시를 읊기를 “내 힘은 산을 뽑아들 만하고, 기운은 온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절이 불리하여 나의 천리마 추가 나아기지 못하는구나. 우 여인이여, 우 여인이여, 그대를 어찌할까?”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좌우의 장수들이 오열하고 있는데 항우의 애인인 우 여인은 항우의 칼을 뽑아 자기의 가슴을 찌르고 자결하였다.
항우는 그날 밤 800여기의 기병을 이끌고 적진 속에 뛰어 들어 일당백으로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다.
항우는 오강까지 달려갔다.


이 오강을 넘으면 항우의 고향인 강동땅에 이르게 되어 있다. 어느 뱃사공이 항우를 보고 배를 내어 주며 이 배를 타고 강동으로 가서 다시 한 번 군사를 모집하여 훗날을 기약하기를 권하였으나, 항우는 강동의 자제를 모두 잃고 혼자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항우는 자기의 천리마인 추를 뱃사공에게 주고 장렬하게 자결했다.
나중에 唐(당)나라 말기의 대표적 시인 杜牧(두목)이 이 곳을 지나다 항우의 자결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지은 칠언절구 제오강정에서 ‘승패는 병가도 기약하지 못한다.


부끄러움을 안고 참을 줄 아는 것이 사나이다. 강동의 자제에는 뛰어난 인물도 많은데 땅을 휘말아 거듭 쳐들어 왔으면 알 수 없었을 것을…’라고 읊고 있다.
여기서 나온 고사가 捲土重來(권토중래)이다.
<자료제공 : 장원한자 당진지점 문의 ☎ 358-0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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