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출발이었다.
그 기세 하늘을 찌를 듯 등등했다. 기대 또한 어느 때보다 높았다.


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했다. 큰 갈등이나 무리 없이 평화 속에 이뤄진 보·혁 간 10년만의 정권교체.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등장한 CEO 대통령. 세계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새 세상에서, 국민들은 벅찬 가슴을 안고 밤마다 잠을 설친 채 설레이는 아침을 맞이하였다. 밤사이에 어제보다 나아진, 변화된 새로운 아침을 기대하며.


그러나 그 벅찬 가슴에 실망이 밀려드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급전직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었다.
우리의 기대주는 어느새 쥐가 되고 개가 되어 추락을 시작했는데, 추락의 깊이는 측정불가다. 지금도 그 추락은 쉬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발가벗겨져 매달려서는 모든 치부와 단점만 부풀려 터뜨려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가진 치부를 마치 그만 혼자 가진 것처럼, 어느 누구도 그를 지지한 적이 없다는 듯 돌팔매질 하는 무리만 남았다. 예수가 “너희 중 죄 없는 자 먼저 돌로 쳐라” 고 했을 때, 돌로 치는 자 아무도 없었다고 성경에는 쓰여 있는데, 마음껏 돌팔매질 하는 우리는 죄 없는 참으로 위대한 무리다.

현대판 용비어천가를 절창하던 그 많던 소리꾼들 다 어디로 갔는가? 침묵하는 허수 속으로 잠적한 고상한 지성들 이성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그 많던 절창 속의 그 영웅적 장점들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 번 구사해본 적이라도 있는가? 불행히도 그에겐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사선에 올라 총 한 번 제대로 쏘아보지 못했다. 첫발이 불발탄이 되고, 응급처치마저 잔 고장을 일으키면, 사수가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적 여유를 주는 법이다. 그럴 기회를 주자.


'악수만 둔다,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만 질책하는데, 정신을 못 차리게 몰아치는 이 마당에 감동은 무슨. 주눅이 들게 해놓고서야 어떤 능력발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실수만 거듭하기 십상이지 않은가?
두둔도 옹호도 아니다. 누구보다 기대도 실망도 크게 했다. 그러나 우리가 선발한 선수다.

무사히 대회를 치르고, 승리의 메달을 목에 걸고, 국위를 선양하고,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내야 하는 선수로서의 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게 옳은 방법 아니겠는가? 영화 ‘친구’에서의 대사가 떠오른다. “고마 해라. 마이 안 묵었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작전, 우리 국민이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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