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살기운동 강우영 회장이 대통령표창을 받기까지

바르게살기운동 당진시협의회 강우영 회장이 지난 8일 바르게살기운동을 통해 국가사회발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현재 당진시협의회장으로 8년이 넘도록 재직하고 있지만 28년 전 처음 바르게살기운동을 시작할 때는 그 역시도 평회원이었다.

강 회장은 “봉사 활동을 해야겠다는 하다가 연이 닿아 바르게살기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긴 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킨 덕에 대통령표창을 받게 됐지만 당진의 바르게살기운동 회원들의 몫이 나에게 돌아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형에게 양보한 배움
강우영 회장의 나이는 실제로는 71세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주민등록상으로는 1949년생이다. 그리고 당시 어렵게 살던 다른 이들처럼 그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당시 공주사대를 가야했던 형에게 그는 자신의 중학교 입학을 양보했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지게를 선물했다. 강 회장은 “(아버지가) 무슨 마음이셨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지게가 도깨비 뿔이 난 것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못 내 아쉬움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지게를 메고 논으로 밭으로 일을 하러 다녔다”라고 말했다.

20대 초반이었을까? 농사일을 도우며 약 10년이 지났다. 강 회장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목수일을 배웠다. 처음에는 농사와 목수일을 병행했다. 어느 순간 농사일이 한계에 부딪히자 그는 건설업에 매진한다. 그렇게 건설업이 그의 직업란을 차지하게 된다. 70대가 된 지금도 건설업을 유지하고는 있다. 하지만 주로 신경을 쓰는 것은 사회활동이다. 바르게살기운동뿐만이 아니라 노인대학에도 강사로 나가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려고 노력한다.

포기하지 않은 배움
노인대학에 나가 다른 이들에게 그가 하는 말은 언제나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2013년 한국방송통신중학교가 처음 생기던 때 중학교에 입학한다. 강 회장은 “방송통신중학교가 대구에 있어서 그 거리를 새벽밥 먹고 다녔다.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홍성에 있는 방송통신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강 회장은 “KTX타고 590km를 이동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 학교 다니는 건 너무 편하다”며 웃었다.

강 회장의 배움에 대한 욕심은 고등학교 졸업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대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다. 지금 같아서는 어린 시절부터 소질이 있던 국문학을 전공하거나 지금 관심이 있고 활동중인 사회복지분야에 도전하고 싶다는 것이 강 회장의 마음이다.

강 회장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서 글을 써 내면 꼭 교실 한 켠에 내 글이 걸리곤 했다. 지금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 학예 경연대회에서 시 부문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9월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주최한 방통고 학예경연대회에서 시 부문 장려상을 수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 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꿈을 잃어 죽는 것
앞 서 언급한 대로 강 회장은 노인대학 강사로 8년 넘는 세월을 강연을 다니고 있다. 당진 관내 노인대학은 모두 다녔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강 회장은 “처음에는 대화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최근에는 노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면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 죽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이루려고 노력하는 꿈이 사라질 때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언제나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고, 그 꿈을 이뤄내는 강우영 회장의 삶에서 지치지 않는 젊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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