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자치행정국장 김덕주

예로부터 물을 다스린다는 치수(治水)는 인류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고대 이집트는 매년 나일강의 범람으로 넓은 퇴적층이 생기며 풍요로운 농사가 가능했고, 중국 고대의 우임금은 홍수를 막고 물을 다스리면서 중국이라는 국가의 토대를 닦았다.

물의 범람을 막고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이 풍족할 때 물을 가두었다가 물이 부족한 시기와 지역에 물을 공급해주는 관개, 배수 역시 무척 중요하기에 물의 범람을 막는 제방과 함께 둑이나 저수지, 수로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충청 지역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는 염라대왕이 사람이 죽어서 오면 살아 생전에 연호방죽, 즉 합덕제는 가보았냐고 묻고, 가보지 못했다면 도대체 무얼 했기에 거기도 가보지 못했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전한다. 그만큼 합덕제는 합덕읍이라는 지명에도 영향을 주듯 오랜 세월동안 주민들과 함께 해 왔다.

합덕제는 후백제의 견훤이 병참을 위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해 갯벌이 많았던 내포지역에서 담수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며 간척하고, 겨우내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물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봄철 주변 마을에 물을 공급했던 것을 감안하면, 후백제의 견훤보다 이전에 쌓았던 고대 저수지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합덕제는 오랜 세월동안 수차례 폐지와 중수가 거듭되었다가 20세기 중반 인근의 예당저수지의 건설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당시의 제방과 일부시설만 남고 농경지로 바뀐지 약 50여년, 당진시에서 10여년에 걸쳐 합덕제의 복원정비를 추진하여 현재 합덕제의 일부가 복원되고 인근에 박물관이 개관하였으며, 최근에는 농촌테마공원이 조성되고 있어 새로운 지역주민들의 휴식처이자 교육체험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지난 여름 연호문화축제를 통해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축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합덕제는 ‘제3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합덕제가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에서 주관하는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등재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1,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합덕제의 건립을 통해 갯벌이 많았던 평야에 담수를 공급하고, 간척을 통해 비약적인 식량의 증산이 가능했다는 점이 우선 이유로 들 수 있다. 또한 합덕제를 조성할 때 진흙과 낙엽, 나뭇가지를 켜켜히 쌓아 견고하게 축조하는 ‘부엽공법’을 사용한 점, 제방을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높은 수압에 견딜 수 있도록 한 점 등에서 당시 조상의 높은 공학적 수준을 볼 수 있는 점 역시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인근 마을에서 각각의 수문과 수로를 운영하면서 건립과 유지보수에 공동체의 참여가 있었고, 이러한 점이 한국 농업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등의 이유로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고, 많은 학자들의 도움으로 순탄하게 등재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만, 등재 과정에서 그동안 합덕제에 관한 연구성과가 부족했고, 전문 연구자도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앞으로 합덕제의 세계관개시설물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이자 교육공간,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등재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대응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달, 당진시는 한국관개배수위원회(KCID)와 합덕제에 관한 연구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연구 협약을 통해 당진시와 한국관개배수위원회는 합덕제에 관한 지속적인 연구, 학술행사, 출판 등을 통해 합덕제의 다양한 가치를 찾아낼 계획이다. 또한 12월에는 이와 연계한 합덕제 연구 포럼이 당진시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합덕제를 바라보는 인문학적 측면, 공학적 측면과 함께 세계관개시설물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조명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가 되리라 기대한다.

아울러 내년에는 합덕제의 복원정비와 함께 농촌테마공원이 개장하며, 합덕제 생태관광체험센터가 착공하면서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에게 휴식과 교육,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연호문화축제 역시 축제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합덕제에 대한 지속적인 발굴과 연구, 자료조사를 통한 서적발간, 학술행사 개최 등을 통해 합덕제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과 세계관개시설물유산으로서의 가치 증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합덕제가 위치한 합덕읍은 마음을 모아 덕을 쌓는다는 ‘합심덕적 合心德積’에서 유래한  말이며, 합심덕적은 바로 합덕제를 쌓는 과정을 상징한다. 합덕제가 지역주민들의 노력의 결과로 나타났으며, 그 노력과 성과에 대한 자부심으로 지역명으로 사용한 게 아닐까?

물론 합덕제가 세계관개시설유산에 등재되어도 특별한 지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 우리나라 공동체 정신의 발현이자 조상들의 지혜가 모여 만든 합덕제가 세계적인 국제기구에서 인정을 받고, 그 가치가 충청남도와 국가에서의 관심과 지원을 비롯해 다시금 조명될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세계관개시설물유산으로서 합덕제를 가꾸기 위해 당진시에서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증진시키고 지속적인 연구와 활용사업이 필요하며 주민들과 함께 합덕제의 문화유산적 가치, 농업적 가치, 생태적 가치를 포괄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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