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교대 명예교수·한국진달래문학관 관장 최명환

지난 9월 13일 오전 8시 45분 출근하다가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당진시 기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테라칸 승용차 뒤에 밧줄로 H빔을 매어 끌고 평탄 작업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켜보았다.

기지초등학교 운동장은 3800제곱미터(990평)이다. 운동장 동쪽으로 증축 공사가 한창인데다 장마에 질퍽질퍽해진 등하굣길은 대형 차량 바퀴 자국으로 우툴두툴해졌다.

울퉁불퉁한 운동장으로 어린이들이 등하교하는 데 걸리고, 공놀이하다 넘어지기 일쑤였다. 이를 본 박연수 교감은 운동장 평탄작업을 직접 하기로 맘먹고 행정실에 2미터짜리 H빔을 주문했다. 백마안전철물은 2미터 H빔 양쪽 끝 가운데에 밧줄을 맬 구멍을 뚫어 ‘H빔끌개’를 만들었다.

박 교감은 봄에도 운동장 평탄작업을 했고, 장마가 끝나고 물기가 빠지자 다시 운동장 고르기에 나섰다. 걸어서 차량을 따라갈 수 있는 속도로 H빔을 끌자 운동장은 판자를 깔아놓은 듯 평평해졌다. 끌개가 돌에 걸리면 차를 세우고 돌멩이를 남쪽 운동장 가로 집어던졌다. 차가 H빔을 앞으로 끌 때는 잘 끌려 왔지만, 운동장 동서쪽 ㄷ자 구간을 돌 때면 H빔이 뒤집혀 차에서 내려 H빔의 날을 세워 끌기를 반복했다.

15바퀴를 끌자 오른쪽 1.5밀리미터 밧줄이 닳아 끊어졌다. H빔에 맨 두 겹 밧줄을 풀고 다시 매어 끌었다. 작업이 중반에 들어섰을 때는 구인순 교장, 행정실장도 나와 지켜보았다. 스무 바퀴를 돌고, 운동장 가운데를 고르자 50분 동안의 작업이 끝났다. 초임 교감의 솔선수범이 놀랍다고 했다.

올망졸망한 어린이들이 울퉁불퉁한 운동장을 걷거나 공을 차는 모습을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단다. 박 교감은 요즘 선생님들은 다 이렇게 근무한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때 서쪽 2층 1학년 교실에서는 마치 밖을 내다보고 암송하는 듯 또랑또랑한 큰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교육 대란을 걱정하는 요즘, 땀 흘려 어린이들의 발과 손이 되어 주는 교감 교장도 있다. 사랑이 땀으로 빚어지는 감동의 운동장을 돌아나올 때 기지초등학교 운동장의 H빔끌개에 밀린 모래가 금빛으로 빛났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