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

일제시대 은행나무에 신사를 설치.

면천읍성에 있는 두 구루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천년이 넘는 것으로 면천의 상징으로 고려개국 공신 복지겸과 그의 딸 영랑의 전설을 담아내고 있어 실물과 역사적 스토리가 매칭 되어 신목(神木)으로 자리하여 1990년 충남도 기념물 82호로 관리되다가 2012년에는 국가 천연기념물 551호 지정된다.

면천은행나무는 지역민들의 역사를 담고 있는 증언자(?)로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그 진가를 알고 먼저 총독부지정 천연기념물로 정한바 있다. 1933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 시행령을 제정하여 천연기념물 1호로 달성의 측백나무 숲과 10호로 연희의 적송을 고시한 후 30호 용문산 은행나무에 이어 면천 오오이초(大銀杏) 즉 오래된 은행나무를 지정했다.

일본은 부상수(扶桑樹)에 대한 관심이 많은 문화가 있다. 그들에게 오랜 연륜의 실물과 역사적 스토리가 있는 면천 은행나무는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총독부의 기념물 지정을 당시 충남도청은 충청도 안내 책자에 수록한다. 고려개국공신 복지겸의 살 던 집터에 있는 오오이초라는 설명을 친절하게 더한다.

그런데 이 사진에 엉뚱한 시설물이 보인다. 두 구루의 은행나무중 우측편에 토리이(鳥門)가 보이고 안쪽에 5단 계단과 석축 제단이 보인다. 그 위에 나무 난간을 두른 작은 일본식 비석이 있다. 토리이는 일본 신사(神寺)의 상징물이다. 이것은  조선총독부는 면천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작은 신사를 설치했던 것이다. 사실 일본에 오래된 은행나무나 희목등에 신사가 설치된 곳이 많다. 대마도의 은행나무나 후쿠이 현 사카이시의 후박나무 신사등이 대표적이다.

일제시대 조선의 곳곳에 신사를 설치한 일본이지만 지역민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지역의 상징물에 신사를 설치한 사례가 또 있었는지는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충청도의 대표적 보호수인 속리산 정1품 소나무는 세조임금과 스토리텔링이 되어 5백년 가까이 사랑을 받고 있다. 면천의 은행나무는 복지겸과 그의 딸과 스토리가 매칭 되어 천년이상 문화적 가치를 발하고 있다.

일제도 이 가치를 주목하여 신사를 설치했던 듯하다. 그런데도 지역에서 조용했던 것이 이상하다. 복지겸 부녀가 아닌 다른 잡신을 모셨다면 지역에서 큰 사단이 났을 것이다. 강직하고 불의에 맞서는 면천지역의 전통이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면천은행나무는 이 땅을 무단 점거했던 일제도 가치를 알고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 했다는 것이 팩트다. 아쉬운 것은 국가에서 1962년 천연기념물을 전면 제지정할 때 면천초등학교 신축 공사를 하면서 토축을 하여 은행나무의 밑 둥이 2미터 가까이 땅속에 묻힌 것이 빌미가 되어 지정에서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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