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을 받으며 주말 오후 오래간만에 남편 손을 잡고 서산의 명산 부춘산을 찾았습니다. 띠 동갑 두 아들은 “모처럼 부모님 데이트 하시라”며 기꺼이 영화보기를 선택했습니다. 말은 부모님 데이트 어쩌고 했지만 내심은 뜨거운 날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시원한 영화관이 좋아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택을 한 것이지요.^^

동아아파트 뒤편에 주차하고 전망대를 향해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돼 해발고도 187.6m의 낮은 산이라고 가볍게 나섰다가도 단단히 마음을 먹게 만듭니다. 평상시 매일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던 것이 효과를 톡톡히 봅니다. 그렇게 거뜬히 올라서니 2008년에 세워진 높다란 전망대를 만납니다. 멀리 간월호도 보이고, 치솟은 아파트 숲 주변으로 논밭이 둘러싸고 있어서 도시와 농촌이 한데 어우러지는 서산시의 매력이 한눈에 보입니다.

바람도 구름도 쉬어 가는 이곳 저곳에서 친구와, 가족과, 연인과 나무그늘 아래 삼삼오오 자리 잡고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곳곳에 놓인 운동기구들은 찾아준 시민들 덕분에 ‘삐그덕 덜그덕’ 소리 내며 요즘 농촌 일손만큼이나 각기 제 역할에 분주합니다.

우거진 숲길 사이를 걷는데 오르락 내리락, 언제 걸어보아도 정겹습니다. 딱딱한 아스팔트길과 런닝머신 위만 걷다가 솔잎 쌓인 폭신한 흙길을 걸을 땐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한마리는 크고 한 마리는 작은 것이 모녀지간일까? 부자지간일까? 부부사이? 형제지간?”

가던길 멈추고 의문을 갖게 하는 두 마리의 청솔모가 인기척에도 놀라 달아나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쫓고 쫓기다가도 다시 만나 마주 보며 노는 모습은 돈도 안주고 볼 수 있는 멋진 공연입니다. 그야말로 덤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부춘산 남쪽의 가장 큰 골짜기에 위치한 서광사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짧지 않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나면 그야말로 인내를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힘겹게 오르고 나면 널찍한 쉼터가 있습니다. 그곳에도 조성된 운동기구에 노부부가 마주 보고 서서는 허리를 빙글빙글 돌려대는데 그 광경이 참 아름답습니다.

“우리 작년에 띠동갑 두 아들이랑 여기 이 벤치에 앉아 쉬어갔잖아. 살찐 큰아들은 지쳐서 앉아있었고, 날쌘돌이 작은 아들은 힘이 남아서 어서가자고 재촉했잖아. 여기 사진 있네. 봐봐. 하하하”

“우리 그때 물도 안 챙기고 올랐다가 모두 사막을 걷는 사람들처럼 힘들어했었는데... 그리고는 허겁지겁 수도회관에 가서 물 얻어먹었었잖아. 그때 물 진짜 맛있었어. 하하하”

우리 가족처럼 이곳을 찾은 사람들 저마다 소소한 추억들 간직하고 있겠지요.

중간 중간 쉬어가는 곳에 세워진 시도 읊조려 가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까지 2시간 동안 자연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추억을 만납니다. 그리고 소박한 소망을 품습니다.

“내 소원이 뭔지 알아? 이 산 옆에 살면서 매일 찾아 오르내리는 거야. 우리가 늙어져 더이상 찾을 수 없고 걸을 수 없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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