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보세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써놓은 일기장을 모아놓은 겁니다. 이틀 전 제 생일이라고 자녀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이 일기장 덕분에 큰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답니다.”

교육자 아버지답게 김상범(당진 거주)전 교감선생님은 지금은 모두 학교 선생님이 된 두 아들과 딸의 일기장을 차곡차곡 모아놓았습니다.

“우리 딸이 엄마랑 처음 목욕탕 갔던 일을 그림일기장에 써놓았더라구요. 모두 발가벗은 모습을 그려놓은 것을 보고 손자들이 ‘우리 엄마랑 할머니가 벗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다’며 키득키득 웃는거에요. 우리 애들 일기장을 심심할 때 한 번씩 읽어보면 엄마 아빠 이야기도 등장하잖아요. 아, 내가 그때 그랬었구나! 하고 추억하게 되더라구요. 아이들이 상세히 기록해 놓은 덕분에 말이에요.”

이야기 하는 내내 선생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들 일기를 꼭 쓰게 하시고 절대 버리지 말고 잘 모아두세요. 아이들에게도, 저에게도 정말 고맙고 소중한 재산이더라구요.”하고 말씀하시는데 큰 교훈을 얻습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일기란, 하기 싫은 숙제 중에 하나였습니다. 방학이면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지어 쓰느라 머리는 쥐가 날 뻔 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일기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듭니다.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일기장은 없지만, 훗날 지금의 내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나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스마트폰 메모장에 긁적였던 일기는 물에 빠진 핸드폰 덕분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추억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노트를 하나 마련했습니다. 침대에 등 기대고 앉아 하루를 정리하면서 기억나는 일, 꼭 기억하고 싶은 일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지쳐 타지 않는 동안 트라이더를 타 보았다.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허벅지가 뻑적지근하다. 운동이 되긴 되나부다. 내일도 호심탐탐 노렸다가 또 탈 테다.^^”

늦둥이 녀석도 옆에서 일기를 씁니다. 훔쳐보니까 전날은 하룻동안 친구들과 당진종합운동장에서 트라이더를 타고 경주 했던 일들을 적었습니다. 어젯밤은 서산 호수공원까지 원정 가서 트라이더 탄 일을 적어놓았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매일 매일 같은 이야기를 적을 만큼 이 아이에게는 트라이더가 소중합니다.

“그때 엄마랑 제가 트라이더 타는 재미에 쏙 빠져있었나봐요.”하고 훗날 늦둥이 녀석이 제가 낳은 아이 무릎에 앉혀 놓고 추억을 되살릴 날이 올테지요.

일주일에 일기 두 편 이상 써서 제출하라는 학교 숙제 덕분에 녀석은 추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추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행운! 독자님께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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