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범(수필가/전 교육공무원)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8명의 재판관 만장일치로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후 법 절차에 따라 파면되는 첫 대통령이 됐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이다. 후유증이 없어야하나 그렇게 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이날 헌재는 박 대통령에 대한 다섯 가지 탄핵 사유 중 두 가지를 직접적 탄핵인용 근거로 판단했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허용·방조하고 그녀의 사익 추구를 지원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구체적으로 대기업 출연금으로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운영, 의사결정에 관여했으며 KD코퍼레이션, 더블루K 등을 통한 이권 추구 과정을 지원했다고 적시했다. 이 같은 위헌, 위법 행위가 재임기간 중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서 최순실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긴 점, 언론의 의혹 제기를 오히려 비난한 점, 검찰과 특검 조사를 거부한 점 등을 들어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헌재 결정은 끝났다. 비록 갈등은 컸으나 우리가 법 절차에 따라 난제를 매듭지었다는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극에 달한 갈등과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 탄핵 찬 반 두 세력이 점차 커지면서 끝내 분단으로 귀결된 해방 직후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0일 탄핵 반대 시위자 3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쳤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촛불 시위건 태극기 시위건 극렬세력을 빼고는 모두가 나라를 위한다는 충정이었다. 그러나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커다란 좌절감에 빠져 있을 것이다. ‘대통력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는 지난주 토요일 서울시청 앞에서 군중대회를 열고 “승복할 수도 굴복할 수도 없다”고 외쳤다. 삼성동 사저 주변에서도 엄마부대, 나라사랑동지회, 구국동지회 등 1000여 명이 “박근혜”를 연호했다.
탄핵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과격 행위를 진정시키려면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지지자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해야 옳다. 국민통합에 힘을 모으고 갈등을 치유하는 일에 당연히 힘을 보태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밝힌 대국민 메시지에서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하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정권 말기에 측근과 연루된 비리 문제로 인해서 명예롭게 청와대를 떠나지 못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소통령으로 불리든 아들이 정부 인사를 지시하고 수많은 이권에 개입해서 수백억원을 챙긴 비리가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 때는 세 아들과 공신들이 정부 요직의 인사 개입과 각종 이권에 개입하여 수천억원을 챙긴 비리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딸의 미국 부동산 구입 의혹과 관련된 비리, 그의 형이 정부 인사에 개입하고 수백억원을 수수한 혐의가 있었으며 부인 권양숙 여사는 모 기업 회장에게서 수백만 달러를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의 형이 기업으로부터 수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있다. 
지난 3월 13일자 조선일보 1면에 게재된 박 전 대통령의 눈물을 글성인 채 웃고 있는 사진이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메시지를 빌미 삼아 야당에서는 벌떼처럼 일어나 헌재 판결에 불복한다며 철저한 수사를 통해서 혹독한 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이 가정 경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딸, 형제 심지어 부인까지 비리에 관여한 것에 비해 자신의 죄가 무겁지 않다는 것에 억울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다.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는 것 같은 역대 대통령과 아들, 형 그리고 아내와의 작당모의가 눈에 선하게 보이는데 왜 그 관계를 파헤쳐 박 전 대통령처럼 탄핵시키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 확실한 것은 역대 대통령들의 행태로 보아 경제 공동체인 가족과 같이 모의해서 국정을 농락했을 경우 대통령직에서 탄핵인용은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차기 대권 후보들이 헌재 판결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다. 마치 역대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한탕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필자만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제왕적 대통제의 구시대적 낡은 제도라고 하면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대통령의 비리가 제도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자질 문제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제도야 어떻게 바꾸든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정부에서 대선일을 5월 9일로 확정했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의 자질을 유권자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전임 대통령들과는 다른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잿밥에 관심을 갖지 않고 탄핵 정국으로 두 쪽 난 국론을 통합하고, 안보와 경제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힘차게 재도약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대통령이 절실하다. 유권자들은 앞으로 두 달 동안 후보들의 역량과 자질을 샅샅이 살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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