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째 등굣길 학교앞 교통정리하는 지체장애 허성무 씨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계성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 주는 이가 있다. 어린 학생들이 혹여나 다치기라도 할까 마음이 쓰여 나오게 됐다는 허성무 씨. 그런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7년째.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아였던 허성무씨에게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 아픔이 있다. 군대에 입대해 군생활을 잘 보내고 있던 허성무 씨는 말년휴가를 나온 85년 6월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을 하다 큰 사고를 당하게 됐다. 신원도 밝혀지지 않은 체, 천안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된 허 씨는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응급실도 아닌 영안실에서 죽지 않을 정도의 연명치료만 받다가 뒤늦게 찾아오신 어머니에게 발견돼 치료를 시작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어머니께 너무 죄송하다는 허 씨는 “당시에 턱뼈가 완전히 부서진 체로 굳어서 엄마 소리도 못했었어요. 어머니를 보면서 그저 울기만 했죠. 어머니께 너무 큰 불효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3년여 간의 입원 기간을 마치고 나온 그는 지금도 말을 할 때 발음이 좋지 못하고, 다리 등을 다쳐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상태다.

병원 생활을 마치고 당진의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재활에 전념했다. 발음이 어눌해진 허 씨에게 어머니는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허 씨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네가 글이라도 쓸 수 있어야 장사를 해서라도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니 글 쓰는 연습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허 씨는 서예학원에 등록해 글씨를 쓸 수 있게 노력했다. 글씨를 쓰는 것조차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글씨를 쓸 수 있게 됐다는 허씨는 당시 군청, 경찰서 등을 찾아다니며 구두 닦는 일을 했다. 본인이 직접 구두를 모아 올 수가 없어서 직원을 두고 일했다. 직원을 두고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다시 한 번 아픔이 이어졌다.

성치 않은 몸이 문제였을까.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바람에 손잡이 부분이 갈비뼈쪽을 치면서 골절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병원 신세를 졌다. 사고는 그렇게 몇 개월 입원한 것 말고도 몇 건이 다 있었다. 입원하고 치료한 병원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크고 작은 사고들은 성치 않은 몸에 계속 찾아왔다. 그런 사고를 겪고 나면 그때마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목발을 쓸 때 체육관 관장은 돈을 받지 않고 점심을 사주면서까지 재활을 도와주기도 했다.

허 씨는 “고향에서 지내다 보니 도와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친구가 무료로 집을 임대해 줘서 살고 있어요.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라고 말했다. 

사고를 많이 당한 허 씨는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다쳐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초등학교 앞 교통정리를 했다고 한다.

허 씨는 “어느 날 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우회전하는 차량 앞으로 어린 학생이 앞만 보고 뛰어가는 거에요. 그걸 제가 본 거죠. 사실 그 자리에서 옛날부터 사고가 많이 나는 자리로 알고는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그 장면을 보니 아이들 등교하는 시간만이라도 내가 나가 교통정리를 하면 아이들이 다치는 일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을 시작한거에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아이들을 위해 그렇게 나가 일하다보니 알아보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이번 2월 14일에는 계성초 교장 선생님이 은퇴를 하시면서 허 씨에게 감사패를 주기도 했다. 허 씨는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특별히 자랑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본인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십수년을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요즘 허 씨는 계성초 앞에서 교통정리를 마치고 나면 복지타운에 나와 친구들을 만난다. 복지타운에서 친구들과 있다가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수업을 듣기도 한다. 보치아 경기를 제일 좋아한다는 허 씨는 합창도 열심히 한다고 한다.

허 씨는 “다른 프로그램도 좋지만 제일 좋아하는 것은 역시 보치아에요. 보치아 경기를 친구들과 어울려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루 일과를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다 저녁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허성무 씨. 그에게 장애인복지관이란 공간이 있다는 것이 꽤 안정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허성무 씨에 따르면 요즘은 어머니가 부쩍 “내가 없으면 네가 생활하기 힘들 것이다. 동생들이 있다고는 해도, 동생들은 동생들 삶이 있다. 내가 죽기 전에 짝을 지어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한다.

허 씨는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시지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런 얘기는 귀에 잘 안 들어와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평생 불효를 했다는 마음이 더 가슴을 짓누릅니다. 그저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에요”라고 말했다.

새학기를 맞이해 개학을 앞두고 있는 계성초 앞 교차로에 다시 나갈 준비를 한다는 허성무 씨.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다른 당진시민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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