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재남 어르신

합덕 운산리에서 태어난 24살의 꽃다운 처녀는 순성으로 시집갔다.

남편의 집안은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다. 남편의 형님댁에서 1년 동안 같이 생활한 후 살 길을 찾아 다시 합덕으로 나왔다. 친정에서 농사지을 땅을 구해 준 덕이었다. 그렇게 소소리로 나온 후에야 딸을 갖게 되었다.

오재남 어르신은 “친정에서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게 도지 지을 땅을 구해주셨어요. 시댁이 워낙 어려운 형편이다보니 그것도 방법이겠다 싶어 합덕으로 나오게 됐죠. 그렇게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부부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참외농사를 지어 당진에 납품도 하면서 살림 역시 차근차근 늘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는 했었죠.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 때부터인가 정말 살만은 해지더라구요. 그런데 너무 열심히 일한게 문제였나 봐요. 제 몸이 너무 망가졌어요”

여자 몸으로 지게까지 저 가면서 일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허리가 망가져 버렸다. 허리에 인공뼈를 넣어 지지대를 넣는 수술까지 했다. 그 때문에 장애판정까지 받았다.

“지금도 척추 중에 3~5번은 통째로 움직여요. 생활하기에 많이 불편하죠”

하지만 정작 큰 불행은 2000년도에 터졌다. 남편이 위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73kg이던 남편의 몸무게는 46kg까지 빠지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는 계속됐다. 하지만 남편은 강한 사람이었고, 5년의 투병생활을 통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삶의 어려움을 함께 한 부부는 서로의 손을 잡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았고, 그렇게 이겨 낸 것이다.

그 즈음부터는 합덕 읍내로 나와 생활하게 되었다. 일상의 삶이 다시 시작될 줄 알았던 그 때. 2010년도 남편은 다시 암판정을 받게 된다. 폐암을 시작으로 암세포가 뼈까지 전이된 것이다. 수혈조차 불가능했던 남편을 결국 그렇게 보내고 찾아온 것은 우울증이었다.

“그 때는 손과 발에 전혀 힘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식사도 할 수가 없었어요. 밤에 누워 있는데 숨이 차 이대로 죽을 것만 같아서 천안에 살고 있던 딸에게 전화를 했어요. 나 죽을 것 같다고. 딸이 급하게 내려와서 순간은 넘겼지만, 혼자서 지내다 보니 그런 상황이 또 찾아왔죠.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장염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겨낼 수가 없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딸을 매번 천안에서 불러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오재남 어르신은 남부노인복지관을 찾았다. 남편이 첫 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따 놓은 운전면허가 도움이 됐다. 혼자서 기동할 수 있는 힘이 된 것이다.

답답한 가슴 어루만져준 남부노인복지관

오재남 어르신은 “아 이러다가 나도 죽겠구나 싶은 마음에 어디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어느 곳을 찾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남부노인복지관이 떠올랐죠. 처음 들었던 프로그램이 ‘웃음치료’였습니다. 웃기는커녕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던 때 들었던 그 수업이 답답한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7년째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오재남 어르신도 처음에는 남부노인복지관을 찾기 망설여졌다고 한다.

“예순을 갓 넘은 나이여서 복지관을 이용하는 어르신들보다 한참 어린 때이기도 했고, 노인복지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그리 좋지 못할 때였어요. 밥 얻어먹으러 가는 곳처럼 인식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제가 직접 도움을 받으니 생각이 180도 바뀌더군요”

남부복지관의 윤성민 복지사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남아 있어요. 그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점심 식사비를 조금씩이라도 받고 있습니다. 아침에 이곳에 나오셔서 프로그램을 듣다 보면 오후까지 있어야 하거든요. 그럴 때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인데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오해와 나쁜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더 심했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했다.

오재남 어르신은 남부복지관을 직접 이용해서 오해를 푼 경우이다.

“난타, 기공체조, 합창부, 설장구, 민요 등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집 앞에 있는 게이트볼구장에서 게이트볼도 하고 있어요. 하루가 정말 바쁘게 돌아가요. 주중에는 정말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려울 정도로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얼굴 표정과 활달한 성격을 보고 있으면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윤성민 복지사 역시 그 부분을 지적했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도 훨씬 먼저 다니기 시작하셨지만, 다른 직원들에게 들어보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신 분들 중에 하나였던 걸 알 수 있어요.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겠지만, 그런 변화에 저희 남부노인복지관이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보람된 부분입니다”

남부노인복지관에 등록된 어르신들은 2,717분이다.

윤 복지사는 “노인인구로 따지면 합덕, 순성, 우강, 면천 등지의 남부지역 어르신들의 숫자가 가장 많을 겁니다. 지역 어르신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드려야 하는데,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그 부분이 항상 죄송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려고 남부노인복지관 직원들은 평균 3~4개의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러 단체들의 노인관련 공모사업을 프로그램과 연계해 신청하는 것이다. 이 작업이 수월치 않다. 워낙 많은 시설과 조직들이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부노인복지관은 여러 가지 지원을 얻었고, 글사랑교실, 민요교실, 컴퓨터기초, 토탈공예, 웃음 치료, 실버밸리댄스, 우쿨렐레, 한자, 탁구 등 21개의 평생배움터프로그램을 활성화 시키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뷰티건강관리, 힐링체조 등의 마무리준비학교 프로그램, 농촌교육문화복지지원사업,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 등의 일자리 창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지원과 후원에서 소외됐다고 볼 수 있는 남부지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윤 복지사는 “사실 남부지역이 대규모 사업체가 많이 위치한 북부에 비해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지역언론에 소개되는 부분도 상대적으로 적다고도 느끼죠. 하지만 다들 그런 것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건식 남부노인복지관 과장은 “남부지역이 노인수는 많지만 노인분들의 경제활동과 사회활동 등에서 다른 지역보다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복지자원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노인복지관이 그 기능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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