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밖으로 나오다 ‘이난일’ 씨

“장애를 가진 다른 분 기회 된다면 많이 나왔으면”

차가 도착하면 워커를 도움삼아 길을 나선다. 요즘 같아서는 차가운 공기가 불편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을 주저할 이유는 없다. 오전 10시 전후로 도착한 장애인복지관에서 수업 듣는 친구들과 잠깐의 수다 후에 수업에 들어간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면 오후 5시 차편의 도움을 얻어 신평면 상오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올해 마흔이 된 이난일 씨의 평소 일과이다. 몇 줄로 줄여 말할 수 있는 이런 평범한 하루일이 난일 씨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하루하루다.

난일 씨는 뇌병변으로 장애를 얻었다. 3살 때 고열을 앓고 난 후 얻은 장애로 가정 안에 주로 머물게 됐다. 완고하신 아버지는 난일 씨가 세상 밖에 나오는 것을 가장 걱정하신 분이다. 타인의 시선에 상처 받을 딸에게 그런 세상을 보여주길 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본인에게도 상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세월을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과 마을 위주로 생활해왔다. 두 동생은 학교를 다니면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난일 씨는 글을 배우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10살 즈음에서야 동생들의 교과서를 가지고 혼자 깨우쳤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이명희 소장이 찾아왔다. 당진시중증자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소장 이명희, 구군청사 위치)가 정식으로 출범하기도 전인 2012년경이었다. 자조모임을 갖고 있던 이명희 소장이 찾아와 세상 밖으로 난일 씨를 나오게 하려고 했다. 어머니는 너무 좋아하셨지만, 아버지는 반대를 하셨다고 한다. 그 때를 이명희 소장은 이렇게 기억한다.

“처음에 소개를 받고 집으로 찾아갔을 때, 어머니는 좋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은 반대가 있으셨어요. 그래도 꾸준히 찾아가서 설득했어요. 겨우 허락을 받고 우리 모임에 난일 씨가 나왔는데, 아버님이 따라 나오셨어요.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 때 제가 다시 설득을 했습니다. 언제까지 아버님이 쫓아다니실 거냐고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따님을 한 번 믿어보시라고 말이죠”

그렇게 장애인 복지관에 나와 수업을 듣게 된지 4년차다. 요즈음은 물론 부모님 없이 혼자서 다니고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수업은 보치아 수업, 수채화교실, 컴퓨터 교실, 노래교실 등의 수업을 수강했거나, 수강중이다. 비장애인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보치아는 그리스의 공 던지기 경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표적구를 먼저 던져놓고 적색공과 청색공을 규칙에 의해 모두 던진 후 표적구에 가까운 공의 숫자가 점수가 되며 규칙에 의한 엔드 후 이 점수의 합으로 승패 를 결정한다. 어릴 적 하던 구슬치기와 약간 비슷하다. 이 수업은 난일 씨가 가장 재미있어 하는 수업중 하나다. 그림을 그리는 수업도 즐겁다고 한다. 본인은 아직 잘 그리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작년에는 장애인복지관에서 개최한 ‘꿈꾸는 수채화 교실’ 전시회에 출품할 정도로 좋은 실력이다.

난일 씨는 “아침에 집을 나서서 오후까지 복지관 식구들과 지내고 있어요. 일단 집에서 지낼 때보다 즐거워요. 사귀는 친구도 많아지니까 여럿이 어울려 다니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은 일이란 걸 알게 됐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한소리 사회복지사는 “난일 씨의 경우에는 컴퓨터 수업이나 수채화 수업을 수강하고는 그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어요. 본인의 의지가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당진장애인복지관은 시청 앞 복지타운에 위치하고 있다. 장애인을 위해 평생교육 개념의 프로그램과 장애인 취업에 관련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진각 사무국장은 “당진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가 집에만 있는 분들을 사회로 끌어내는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면, 장애인복지관은 그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혹여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저희들과 전화로라도 상담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다.

난일 씨는 “저 역시 아버지가 반대하셨죠. 하지만 지금은 별말씀 안하십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시고 있어요. 장애를 가진 다른 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집안에 앉아 스스로 상처를 자꾸 들여다보기보다 이런 시설 같은 곳에 나와서 스스로 자신을 드러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어느 정도 스스로에게 치유가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명희 소장은 “이제 한 단계를 뛰어 넘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작은 돈이나마 직접 돈을 벌면서 비장애인과 어울리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난일 씨가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어요.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같이 준비를 해야겠죠”라고 말했다.

난일 씨 역시 이제 수업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돈을 벌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어한다. 난일 씨는 “할 수만 있다면 일을 해보고 싶어요. 아직 서툴지 모르겠지만,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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