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장사했는데 올 같은 불황 처음”
청탁금지법 이후 설명절 특수 사라져
텅빈 재래시장, 선물용도 제수용도 안팔려
설 명절을 열흘 앞둔 지난 20일 당진시 재래시장에서 한 상인이 텅 빈 길거리에 배추와 무, 대파 등 각종 채소를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설 명절 특수요? 한번 둘러보세요, 사람이 있나.” 지난 20일 오전 11시 당진시 읍내동 일원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 이 모 씨는 시장 상황을 묻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40여 년간 이곳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그는 “지난 추석에 이어 명절을 앞두고도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될 때가 있었나 싶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점포 한편에 쌓인 선물세트와 과일 상자들을 가리키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때문에 선물 주문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이나 높으신 분들은 수십억 수백억을 횡령하고, 탈세를 해도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데 서민들은 김영란법 때문에 자영업자들만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김영란법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 씨의 말처럼 시장은 설 대목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산한 모습이었다. 옷가게와 화장품 매장이 들어선 시장 입구 거리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정작 시장 안은 텅 비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 모(63) 씨는 “지금쯤 음식 장만이나 선물용으로 택배 주문이 물밀듯 들어와야 하는데 올 들어 한 건의 주문도 없다”고 말했다.
한 식료품 가게에서는 가래떡이나 만두 등 설 음식 재료를 고르다가도 가격표와 지갑 속을 번갈아 들여다 보며 구매를 망설이는 주부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주부 이 모(56) 씨는 “고기며 채소며 안 오른 게 없어 가계부에 주름살이 진다”며 “달걀 한 판에 1만 원도 넘으니 제사 음식도 좀 바꿔야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합덕시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 채소가게는 설 명절을 맞아 황태포와 청주, 한과 등 제수용 식품을 함께 진열해 놓았지만 관심을 보이는 행인은 없었다. 3개 3000원씩 하는 오이를 사는 데도 가격 흥정이 오갔다.
가게 주인 전 모(50) 씨는 “10년 전부터 값을 한 번도 올리지 않고 황태포 한 마리에 3000~5000원씩 받고 있는데 비싸다고 그냥 가는 사람도 많다”며 혀를 내둘렀다.
설 연휴가 한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통시장은 채소값 및 식재료 물가 폭등과 소비 패턴 변화로 명절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상인들은 대형마트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호객에 나서지만 장을 보는 주부들의 지갑은 선뜻 열리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전통시장 지원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시장의 상인들은 하나같이 “캠페인 말고 김영란법 개정, 시장환경 개선 등 대책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