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부터 아파트 외벽 재도장공사가 진행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페인트칠을 하느라 벽에 매달린 인부들을 보면서 그분들이 일할 때 어떤 마음인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십년 넘게 이 일을 해왔다는 한 분과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일할 때 어떤 마음이냐구요? 내내 긴장 그 자체지요. 사고가 실제로 적잖이 일어나거든요. 2014년에는 절친이 작업 중 추락해 이별을 고했습니다. 그때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한동안 괴로운 나날을 보냈지요. 올해 7월에도 지인이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이럴 때는 정말 이 일을 내가 왜 하고 있나 싶어 그만두고 싶어집니다. 의욕이 상실 되는 거지요.”

“안전장치를 하는데도 이런 사고가 생기나요?”

“아무리 바빠도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알면서도 설마! 하면서 급히 진행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만나게 되지요. 특히 올 여름 사고 같은 경우는 부도난 건설사에서 옥상에 설치해 놓은 고리가 부실해 끊어지면서 사고를 당한거였습니다. 그래도 어디에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이미 부도난 회사에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어려운 직업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사업을 했었지요.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일을 시작했는데 사실 기술이 숙련될 때까지는 돈도 되지 않습니다. 눈비 오면 못하지요, 바람 불어도 이 일은 못합니다.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2-3년 열심히 배워 숙련된 기술자가 되면 적지 않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혹 배워보겠다고 오는 사람은 없나요?”

“요즘 젊은이들이 어려운 일 할라고 하나요? 이 일을 하고 싶으면 현장에 가서 오너 붙들고 ‘나 배워보고 싶다’ 하면 그 적극적인 마음이 예뻐서라도 가르쳐 주지요. 그런데 요즘 그런 젊은이 찾아볼 수 없지요.”

“이 일을 계속 하실 생각인가요?”

“사실 올해는 그만둬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둘 대학생이에요. 더군다나 나이 50대에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까? 열심히 해야지요.”

“일하시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목숨 내 놓고 일 하는 내내 긴장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힘들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은 특히 요즘에는 대처하기 힘들 정도로 민원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갑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존에 있던 흠집을 덮어씌우는 일도 허다하구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보람을 느낄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예쁘게 단장 돼 주민들이 만족 해 하면 우리도 자긍심을 느끼고 뿌듯하지요.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 그런 일 드뭅니다만, 애쓴다고 부녀회에서 국수라도 삶아서 주시고 따뜻한 커피라도 타 서 건네주시면 그렇게 고맙고 자긍심도 느껴지고 활력이 됩니다.”

국수 한 그릇, 커피 한잔에 고마움도, 정도 느끼는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이분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삶의 막다른 기로에 내몰려 서서 스펙도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때로는 지나친 갑의 횡포마저도 쓴웃음으로 넘겨야 합니다. 숨이 막히도록 독한 신나 냄새에 머리가 아파오고 호흡이 가빠와도 묵묵히 일하는 이분에게서 일한 만큼 얻는 정직한 직업의 숭고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대체 어디에 쓰려고 자꾸 물어보냐’는 그분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시는 분들 많은데 저는 그저 컴퓨터 앞에서 한량처럼 일하면서도 어깨가 뭉쳤네, 손목이 아프네 불평만 했었네요. 물론 더 극한 상황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자신이 하는 일에 불평 대신 감사를 느꼈으면 하는 바램 그것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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