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호당진군협의회 ‘강 흥 준’ 회장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1977년은 의미 있는 해로 기록하고 있다.
故 박정희 대통령이 경북 구미시 금오산의 등산로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자연보호를 위한 기구설치와 본격적인 추진방안에 대해 지시한 것을 계기로 자연보호회 발족이 이루어졌다.


이후 (사)자연보호협의회·자연보호중앙협의회 등이 결성되었으며 1978년 10월 5일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됐다. 강흥준 회장은 현재 자연보호당진군협의회 회장, 당진농협 환경파수꾼 회장으로서 올해로 28년째 자연보호활동에 나서고 있다.


그는 산업혁명과 문명의 발달에 따른 오염과 인간의 욕심으로 무분별하게 훼손되는 환경을 보호해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손하경 기자 sarang418@hanmail.net

▲ 강흥준 회장은 올해 28년째 헌신적인 자연보호활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몸살’앓는 자연,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워

자연보호활동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강 회장이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강 회장은 자연이 때묻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환경의 안타까운 현실들을 털어놓으며 사람들이 환경오염문제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바로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울가의 물을 손으로 떠 마시고 산 속에서 여러 열매를 마음껏 따먹던 시절이 우리나라에 분명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미 오래전부터 가정과 사무실에서는 정수기를 필수품으로 한 대씩 갖춰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지어는 그것 마저도 믿지 못하여 정수기 물까지 끓여 마실 정도이지요.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신뢰를 되찾으려면 바로 ‘나’부터 개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실천한다면 분명 자연은 우리에게 믿음을 줄 것입니다”


강 회장은 자연보호당진군협의회에 28년간 소속되어 있으면서 그 중 5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몸소 실천을 보이며 자연보호활동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현재 13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폭넓은 자연보호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태안기름유출 사고현장에 회원들과 찾았을 때 입이 저절로 벌어지더군요.
TV에서만 보다가 직접 가서 눈으로 보니 매우 심각했습니다.
회원들과 돌에 묻은 기름을 하나 하나 제거하면서 물론 힘도 들었지만, 활동의 필요성을 더욱 깨달았고 조금씩 복구되는 모습을 보며 보람도 느꼈지요.


또 쓰레기를 주울 때 ‘수고한다’는 말을 들으면 쑥스럽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현재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자연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고 있는 자연이 스스로 회복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지요.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환경에 관한 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서 어렸을 때부터 환경의 중요성을 심어줘야 합니다”


▲ 오염으로 인한 생태계파괴 등으로 먹이를 구하지 못한 철새에게 줄 먹이를 나르고 있다.
“자연이 살아야 후손인 내 자식·손자도 산다”

강흥준 회장은 ‘자연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라는 구호를 늘 되새기면서 헌신적인 활동으로 여러 차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오염으로 인한 생태계파괴 등으로 먹이를 구하지 못한 철새에게 줄 먹이를 뿌려두었으며, 전국의 명산과 거리 곳곳을 다니며 등산로 표찰달기, 쓰레기 줍기, 야생동·식물보호활동 등을 벌여왔다.


“‘자연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는 말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몇 년 전, 일본의 후쿠오카에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인에 대해 평판이 좋을 리 없지만, 그들의 의식 수준만큼은 본받을 점이 많다고 봅니다.
그곳에서 크게 느낀 점은 거리에 쓰레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강 회장은 보릿고개를 넘던 가난하고 힘겨웠던 옛 기억을 또 한 번 회상했다.
그의 꿈은 선생님도, 의사도 아닌 그저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다.


“특별히 되고 싶은 것은 없었습니다.
현재의 삶을 만족하면서 산다면 그것이 행복이고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결혼 초 형편이 어려워 이발기술이 있던 저는 이발소에서 일하며 근근히 가정을 꾸려가기도 했었지요.


▲ 태안기름유출 사고현장에서 기름제거작업
또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함께 지게에 땔감을 한 가득 싣고 장에 내다 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만 나와도 잘 배운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많이 배우지 못해서 자식들만큼은 잘 가르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저의 뜻을 알았는지 자식들 모두 금융과 공직업무를 맡고 있어 마음이 흐뭇하기만 합니다”


강 회장도 역시 자식자랑에 여념이 없는 평범한 부모다.
그의 나이 60대 중반을 넘긴 나이로 이제 행복을 조금씩 나누어 줄 때라고 말한다.
힘이 닿는 날까지 회원들과 자연정화활동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강 회장.


“후손은 남이 아닙니다.
나의 자식이고, 손자입니다. 누구든 나의 가족에게 안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모두가 관심을 갖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회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강요를 해서라도 적극 동참하도록 권고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