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았던 당진소방서 박승래 소방경 이야기

▲ 연구에 참석한 대원들. 사진 왼쪽부터 원관희 소방위, 박승래 소방경, 이창희 소방장.

2015년 12월 3일 서해대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어둑한 오후 6시 10분경. 케이블이 화재로 끊어졌고, 안타까운 동료의 죽음이 있었다. 불이 붙은 3개의 케이블 중 단지 하나가 먼저 끊어진 것뿐이었다. 남은 두 개 케이블의 화재를 진화하지 않으면, 서해대교 위에 멈춰 서 있는 모든 차량이 바다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

아수라장 속에서 소방대원들은 화재를 수습했다. 소방호수의 물도 쉬이 올라오지 않아, 소방차량 두 대를 연결해야 물도 겨우 올라오는 높은 곳. 180m 높이의 주탑 위에서, 초속 17m의 강풍을 맞으며, 화재를 진압했다. 소방대원들은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동료 하나의 희생이 있었을 뿐이다. 애틋한 동료를 먼저 떠나보낸 것은 가슴에 묻었다. 더 많은 생명을 구한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현장에는 당진소방서의 박승래 소방경이 있었다.

사고 이 후 방송에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사고 원인을 가지고 여러 말들을 했다. 누군가 낙뢰에 의한 화재였다고 하면, 어떤 교수는 마찰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했다. 또 어떤 이는 탄성이 변하면서 불이 났다고 했다. 속 시원한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관심마저도 오래가지 못했고, 막혔던 서해대교가 다시 개통됐다는 뉴스 이후로는 서해대교 사고는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지만, 사고로 희생된 이병곤 포승안전센터장 역시 동료중의 하나였다. 박승래 소방경은 직접 원인을 찾기로 했다. 당진소방서의 다른 동료들이 함께했다. 원관희(45,채운동), 이창휘(45,읍내동) 이구용(48,신평면), 김관섭(48,원당동), 김창선(45, 채운동), 장선정(38,원당동) 대원까지 7명의 당진소방서 소방대원들은 6개월을 노력했다. 주야간근무를 번갈아 하면서도 노력은 멈추지 않았다.

박승래 소방경은 “그리스 리온안트리온 다리 화재 사고 이후, 세계에서 두 번째 사장교 낙뢰 사고여서인지, 과학적 자료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하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서해대교에도 다시 사고가 날 수 있고, 인천대교도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멈출 수 없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전북 완주에 있는 ’전기안전연구원‘에도 찾아갔다. 전문가들이 언급하던 발화원인들 중 마찰열 발화설, 탄성변화 발화설은 검증에서 탈락했다. 가장 유력했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못했던, 낙뢰발화설만 남았다. 하지만 낙뢰설을 부정하는 강력한 반증은 기상청에서 나왔다. 당시 당진에는 낙뢰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2,000암페어 이하의 낙뢰는 인식하지 못하는 기상청의 시스템을 고려했다. 2,000암페어를 기준으로 증거를 하나하나 맞춰나서 실험했다. 케이블 중심부만 소실된 것, 부분적인 변형과 소실, 탄 자국 없이 외부로 말린 피복, 강력한 전류만으로 나타나는 연성파괴 현상들이 나타났다. 그렇게 화재 원인은 낙뢰로 인한 발화였음을 증명했다.

박승래 소방경은 “저는 그저 발표만 했을 뿐 당진소방서 대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힘든 작업이었을 겁니다. 사명감을 갖고 연구에 동참해 준 당진소방서의 대원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개인적으로 화재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서해대교 발화 연구 논문‘은 국민안전처장관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화재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대원들의 생활은 바뀌지 않았다. 주마다 밤낮을 바꿔가며 근무를 하고, 화재 현장이나 사고 현장에서도 두려움 없이 나선다. 아니 두려움을 애써 숨기고, 애써 누르고, 또 애써 잊어버리며 화재를 진압하고, 사고현장을 수습한다.

-당진소방서 박승경 소방경과 인터뷰 후 재구성한 글입니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