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화 / 편집위원, 민속지리학 박사, 충청남도문화재전문위원, (사)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 성구미 당산 및 포구 전경 (1952년, 주둔 중이던 그로미터 미군병사가 촬영 )

송산면 가곡리 북쪽 끝에 「성구미」라는 조그만 포구가 있는데 옛날 미군 통신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주위 경관이 수려하여 관광지 겸 휴식공간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곳에 쌍바위, 마고굴에 관한 전설이 있다.




송산면 가곡리 북쪽 끝에 「성구미」라는 조그만 포구가 있다. 옛날에는 미군 통신부대가 주둔했던 곳으로 주위 경관이 수려하여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고 성구미 당산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현재 현대제철소가 들어서면서 성구미 염전지대 등은 모두 공장부지로 바뀐 지 오래다.


성구미는 옛 면천군 창택면(倉宅面) 성구미리(成九尾里)지역으로서 성은 섬, 구미는 구미의 변형어로 지형이 섬과 같이 끝이 막힌 섬구미에서 유래했다. 성구미의 지명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3가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첫째 예부터 육지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 마을로 찾아들면 모두 부지런히 일해서 성공하여 나가는 마을이라 해서 이룰 성(成)자의 “성구미 마을”이 되었다는 설과,

둘째 현재 염전터가 된 목쟁이 부분이 잘려서 마을이 섬(島)을 이루면서 섬 끝에 포구가 위치했다하여 섬꾸미가 변해서 성구미가 되었다는 설로 나중에는 이 섬이 모래톱에 의해서 연육되어 현재와 같이 되었다는 설과,

셋째 가곡리 입구에서 포구내로 들어오는 지형이 성(城)을 쌓아 놓은 듯하고 포구가 산의 아홉 봉우리 끝에 위치해 성구미(城九尾)로 불렀다는 설이 있다.


▲ 바다에 떠있는 쌍바위
① 쌍바위의 전설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 앞바다에 바위가 두 개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이 바위는 예로부터 쌍바위라고 불러지고 있는데 이 바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송산면 가곡리 성구미 앞바다에 바위가 두 개 나란히 마주 보고 있다. 이 바위는 예로부터 쌍바위라고 불러지고 있는데 이 바위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아주 옛날 이 곳에 마흔을 좀 넘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가난해서 그 날 그날 입에 풀칠하기에도 바빴지만 금실이 좋아서 행복하게 사는 부부였다. 그러나 이처럼 행복한 그들에게도 한 가지 걱정거리는 있었다. 그것은 슬하에 자식이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아내는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찬물을 떠 놓고 빌었다.
“하늘님, 우리들에게도 부디 아들 하나만 점지하여 주십시오.”


그는 이렇게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손을 비벼댔다. 그리고 난 다음에야 다른 일을 했다. 그런 어느 날 드디어 그들이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졌다. 부인이 임신을 한 것이었다. 그들은 어찌나 기뻤던지 둘이 얼싸 안고 팔짝팔짝 뛰었다. 배가 고픈 줄도 몰랐다.


그 후 부인은 아기를 낳았다.
그런데 그게 마침 남매 쌍둥이었다. 그들의 기쁨은 순간 적이었다. 예로부터 죄 많은 사람이 쌍둥이를 낳는다고 했는데 거기다가 남매 쌍둥이가 아닌가.


옛말에 쌍둥이를 낳으면 그 집에 큰 액운이 들어 닥친다는 말이 있었다. 부인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근심에 사로잡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아무런 일도 없이 잘 자랐다. 그러나 그들 부부에게는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텐데 어쩌나?”
남편이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저녁상을 내가던 아내도 발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 이렇게 날마다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불행이 닥치기 전에 딸아이를 어디다 멀리 갖다 버립시다.”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남편은 우직하게 말했다. “갖다 버려요?”
그의 아내는 두 눈이 등잔만 해져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게 편하겠어....” “안돼요.”


“그렇다고 언제가지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남편의 목소리는 드디어 거세어 졌고 자기의 결심은 단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되니 그의 아내는 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남편은 약간의 식량을 싸서 들고 아이와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 그 곳은 오늘날 쌍바위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배를 멈추고 식량과 딸을 내려놓은 뒤에 밥 짓는 법을 가르쳐 주고 훌훌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동안 실신한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지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딸에 대한 온갖 생각도 차츰 사라지고 세 식구는 다시 단란한 생활을 지속했다.


이젠 집안도 부유해졌다.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다. 아들도 어엿한 장정이 되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아들은 고기잡이를 하기 위하여 배를 몰고 나갔다. 한참 파도와 싸우며 나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호기심이 생겨서 배를 그곳으로 대고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갔다. 그랬더니 거기에는 웬 처녀가 옷도 입지 않은 채 물고기를 막대기에 꿰어서 굽고 있지 않은가. 그는 나무 뒤에 숨어서 처녀가 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얼굴이 어쩐지 자기와 닮은 것을 알았다.


그는 필경 하늘이 내려준 배필이라고 생각하고 처녀 가까이 갔다.
“고기는 뭐로 잡았어?”
“손으로 잡았지.”


“여기서 누구하고 살아?”
“혼자.” “뭘하고?” “헤엄치고.”


목소리가 은방울 구르는 듯했다. 그는 처녀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기도 모르게 처녀의 손을 잡고 말았다. 그 순간 청천 하늘에 먹구름이 감돌더니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가 나면서 그들은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쌍바위」라고 하는데 해마다 두 바위는 이 날이 되면 굴러와 붙었다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바위가 마주 볼 뿐 오랜 세월 속에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② 마고굴의 전설

송산면 가곡리 두봉산 서쪽 아래에 한 25명 정도 들어 갈 수 있는 조그만 굴이 하나 있는데 이 굴을 마을사람들은 「마고굴」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한편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이 마을에 가난하여 장자(長者)집 부엌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처녀가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에 자라면서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항시 부황이 나서 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부모들은 할 수 없이 그녀를 부잣집의 심부름꾼으로 보냈다. 그녀가 심부름꾼으로 들어간 지 몇 년 후에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가 일을 돌보게 되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스러웠다. 처음에는 혼자만 잘 먹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가서 생활이 편안해지고 옷 걱정이 없어지자 자연히 집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부모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이 집에서 곡식을 얻어다가 부모님께 드린다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럭저럭 그녀가 이집에 온지 몇 년이 흘러갔다.

그녀는 아름다운 색시로 성장했으며 반달 같은 얼굴이나 몸 자태가 아름다워서 이 집에 있는 남자 종들이 군침을 삼키곤 했다. 집안에서 여러모로 귀여움 속에서 자라던 그녀가 하루는 주인의 부름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흰수염을 자주 만지면서 이제는 어엿한 처녀가 되었으니 시집을 가야한다고 말하고 집안에 있는 남자 종 떡배가 어떠냐고 살며시 물었다. 그녀는 수줍어서 대답도 못하고 항시 자기에게 짓궂게 노는 떡배가 싫어서 좌우로 고개를 흔든 채 방을 나왔다.


그해는 날씨가 몹시 가물었다. 한발이 심하자 큰 흉년이 들어서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판이었다. 하루는 그녀가 아침 일찍 밥을 짓기 위해 부엌문을 열려는데 부엌근처 감나무에 사람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가까이 가보니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자기 남동생이 아닌가? 그녀는 더욱 놀라서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동생에게 물었다. 밤에 매를 너무 맞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동생은
“밥 한술만 주세요. 밥 한 술만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소이다.”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동생을 풀어서 부엌으로 데리고 와 밥상을 차려 주었다. 조금 전까지도 죽은 목숨이던 동생이 밥을 미친 듯이 먹고 나서 기운을 차린 듯 그제서야 누나를 알아채고 눈물을 흘렸다. 오랜만에 남매가 상봉한 것이다.


그들이 부엌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저녁에 잡은 도적이 도망갔다는 떡배의 큰소리와 함께 종들이 이리저리 몰려 다녔다. 떡배는 어제 저녁에 배가 고파서 누이를 만나러 온 남동생이 담을 뛰어 넘었다 하여 잡아서 나무에 매달았던 것이다.


그녀는 얼른 남동생을 독 속에 숨기고 주인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집에 어제 밤에 들어온 사람은 도적이 아니라 자기를 만나러온 남동생이니 살려 달라고 애원을 했다. 사랑채에서 혼자 자던 주인은 아무 소리 없이 이불속으로 그녀를 끌어 들였다. 그녀는 이불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주인에게 겁탈을 당했다. 주인은 흐느껴 우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젠 됐다. 네 동생을 살려 줄 테다. 너도 도적의 형제이니 이집에서 당장 떠나라. 그동안 일한 대가로 쌀 한가마를 줄 테니 당장지고 떠나라.”
주인이 노기 띤 얼굴로 말하자 그녀는 방문을 차고 나왔다. 그리고 해가 뜨기 전 일찍 쌀 한가마를 동생의 지게에 지워서 그 집을 떠났다.


그들은 저녁 늦게야 집에 도착했다.
쌀 한가마로 며칠을 살다보니 다 떨어졌다. 그녀는 집안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년 일을 하고서 쌀 한가마를 받은 것에 대해서 분통이 터졌다.
그래서 복수를 하기로 하고 무당을 쫓아다니며 경 읽는 것을 배웠다.


몇 년 후에 그녀도 의젓한 무당이 되어서 돈도 많이 벌고 손님들도 많았다.
하루는 그녀가 마을에서 경을 읽고 있는데 떡배가 나타났다. 경을 읽다가 떡배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날따라 많은 돈을 번 그녀는 새벽에 고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도중에 산모퉁이에서 떡배를 만났다.


떡배는 그녀를 보자마자 옷을 벗기고 겁탈을 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누워 있다가 숨겨둔 칼을 꺼내어 떡배를 찔렀다. 옛날의 복수인 듯 했다.


그녀는 산속으로 도망쳐서 굴속으로 들어갔다. 마을에는 그녀를 잡으려고 포리들이 쫙 깔려 있어서 내려 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기가 살았던 주인에 대한 복수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굴속에서 옷을 찢고 머리를 헝클고 노모로 변장을 했다. 무당을 하면서 배운 그녀의 변장술은 대단했다.


그녀는 노파로 변장을 해서 거지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산을 내려와서 남쪽의 전라도 지방으로 가 무당 생활을 해서 돈을 벌면 다시 이곳 굴속에 와서 살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그녀가 종노릇하던 집주인이 늙어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는 복수를 하지 못한 서러움에 몇 날 며칠을 세수도 안고 미친 듯이 울다가 죽었다.
그 후부터 동네사람들이 마귀할머니가 살던 굴이라 하여 이굴을 마귀굴 혹은 마고굴이라 불렀다 한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