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우리 학교 공개수업 하는 날이네요? 후문에서 만나 함께들 갑시다!”

“저는 내일 직장 때문에 못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대신 가시기로 했어요. 휴~ 나도 꼭 가서 보고싶은데...”

“저는 하루 휴가를 냈어요. 저는 할머니도 가까이 안 계시고 아무도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직장에 양해를 구했네요.”

“첫 아이라서 그런지 제가 다 떨리네요. 우리 애기가 손이라도 들라나 싶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발표는 잘 할까싶고...”

“작년에 우리 아이 가보니까 다들 잘 합디다. 너무 걱정 마셔.”

2학년 아이를 둔 선배님의 한마디에 그나마 안심이 됩니다.

탑동초등학교 공개수업을 하루 앞두고 헬스장에 모인 학부모들이 기대 반, 근심 반 섞인 목소리들로 대화를 나눕니다. 공개수업이 뭐라고...^^

그리고 다음 날인 27일 오전 일찍부터 서둘러 엄마들이 저마다 꽃단장을 하고는 학교를 향합니다. 평상시 민낯에 늘 츄리닝 차림만 하고 다니던 한 엄마는 마스카라에 뻘건 입술도 찍어 바르고, 인터넷에서 특별 주문했다는 고운 원피스까지 차려 입어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 했습니다. 게다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디 높은 구두까지 맞춰 신고는 어색하게 걷습니다. 행여 우리 아이 기죽을까봐 엄마가 며칠 전부터 이모저모로 준비해 차림새에 신경을 썼습니다. 공개수업이 뭐라고....^^

예정된 시간보다도 일찌감치 도착한 학부모들이 벌써 복도를 가득 메웠습니다. 성미 급한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창밖에서 내 아이를 찾아봅니다. “엄마 왔다” “할머니 왔다”는 표시를 해주고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서야 등록부에 이름을 적습니다.

1학년 첫 공개수업이어서 그런지 교실 뒤를 가득 메운 학부모들이 더 긴장한 모습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습니다. 한결같이 상기된 얼굴에 의욕이 넘치다 못해 붕붕 떠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의 얼굴이 시무룩합니다. 일 하시느라 부모님이 오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그래도 의젓하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고마워 엄마들은 내 자식 네 자식 할 것 없이 사진에 담아 실시간 부모님들과 공유합니다. 참여하지 못한 엄마들은 덕분에 안심합니다.

“자, 우리 동요 한 곡 부르고 수업을 시작해 볼까요?”

1학년 2반 김선아 담임선생님의 고운 반주에 맞춰 아이들은 누가 누가 목소리가 더 크나 경주하듯이 힘차게 노래 부릅니다. 아이들이 집에 와서 즐겨 부르던 노래여서 흥얼흥얼 학부모들도 따라 부릅니다. 그렇게 공개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학용품을 그동안 어떻게 사용했나요?”

“저는 지우개에 구멍을 뻥뻥 뚫었어요.”

“저는 연필로 지우개를 콕콕콕 찔러서 괴롭혔어요.”

“저는 책 표지를 뜯어서 딱지를 만들었어요.”

“연필을 꾹꾹 눌러 써서 부러지게 했어요.”

내 아이가 손을 번쩍 번쩍 들어주면 엄마들은 안심합니다. 그런데 시종일관 도통 손을 들 생각이 없는 아이 엄마는 애가 탑니다. 손자가 손을 번쩍 들고 발표를 마치자 할머니 할어버지가 환히 웃으십니다. 한 아이에게 발표해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엄마가 긴장합니다. 행여 주제에 맞지 않게 엉뚱한 말이라도 하면 어쩌나,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잘해야 할텐데 염려가 이어집니다.

“그럼 학용품은 앞으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각자 학용품이 되어서 모둠별로 서로에게 물어봐주기로 해요.”

“나는 연필이야, 나를 어떻게 사용해줄래?”

“아주 아주 조심히 잘 사용하께.”

“나는 책이야, 나를 어떻게 사용해줄래?”

“이제 책표지 뜯어서 딱지 안 만들게.”

“나는 지우개야, 나를 어떻게 사용해줄래?”

“난 널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놔 둘거야.”

한 아이의 대답에 교실이 웃음바다가 됩니다. 친절한 선생님이 아이의 눈높이에 얼굴을 맞대고 ‘학용품은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 올바르게 사용해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설명을 해줍니다.

올 3월.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던 아이들이 그새 많이 자랐습니다. 미처 페이지를 찾지 못한 친구의 책장을 넘겨 함께 찾아주는 모습, 지독히도 내성적인 한 친구의 손을 잡아 모둠 친구들이 함께 들어주던 모습, 이 반에서 키가 가장 큰 남자친구가 가장 작은 여자아이에게 다리를 구부리고 눈높이를 맞춰 질문하는 모습은 선생님과 꼭 닮았습니다. 아이들은 교과서 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참 예쁘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오늘 씩씩하게 발표 참 잘했다’ 칭찬해주는데 대답 대신 근심어린 표정으로 묻습니다.

“오늘 우리 선생님 뱃속에 아기가 힘들지 않았을까요?” 방금 전에 물 먹은 우리집 화분처럼 아이의 눈도 내 눈도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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