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찌감치 눈이 떠집니다. 고대종합운동장에서 시민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당진시민이 된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러한 행사에 직접 참여해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우리 동에 육상 선수가 없어요. 제발 400미터 계주에 참여해주세요. 메이커 츄리닝도 한 벌 드리구요, 특별히 육상 출전 선수에게는 기능성 티셔츠도 드려요. 못 달려도 돼요. 부담 안 가져도 돼요. 기권하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주변분들 가운데 달리기 참여하실 만 한 분 추천 좀 해주세요.”

‘못 달려도 된다’, ‘부담 안 가져도 된다’, ‘메이커 츄리닝과 티셔츠를 준다’는 체육회 관계자의 달콤쌉싸름한 유혹에 그만 홀라당 넘어가 망설임 없이 단번에 ‘OK’ 하고 똑같은 유혹에 걸려든 지인들과 그렇게 ‘육상선수’라는 어마어마한 이름표를 달고는 고대운동장을 향하여 한 차로 이동합니다.

우리 동 출전 선수들은 한결같이 40대 중반을 넘어선 반면에, 함께 달릴 선수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훑어보니 일반부라는데 파릇파릇한 20대 초 중반의 아가씨 총각들입니다.

“아이고, 워치게 20대 허구 40대 허구 겨루는 게 말이나 된대유?”

“흐미 저거 봐유. 신발부터 다르구만유. 스파이큰가 뭣인가 신었잖유. 딱 봐도 선수출신이유. 선수랑 일반인이랑 달리라구유?”

40대 선수들, 아무 죄도 없는 체육회 관계자에게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해가면서 자신감은 급 하강합니다.

아내의 꼬드김에 넘어가 얼떨결에 100미터 달리기에 출전한 남편은 마음만은 20대입니다. 다 제끼고 1등할 것 같은 표정입니다. 몸매도 얄쌍한 20대들을 육중한 몸으로 일단 기선제압 해봅니다. 그렇게 언제 들어도 공포스러운 총소리가 땅! 울리고 번개 같이 뛰쳐나가는 20대 선수들을 저만치 앞서 보내고도 나온 배에 힘 꽉 주고 최선을 다해 끝까지 달리는 모습은 아내에게만큼은 이미 1등입니다.

드디어 400미터 계주, 세 번째 주자로 함께 뛸 선수들을 더더욱 눈여겨보니 파릇파릇 팔랑팔랑 날아갈 듯이 가벼워 보입니다. 그중 한 사람은 키도 크고 쭉 빠진 몸매가 심상치 않아 물으니 과거에 육상선수 출신이었노라면서 기를 죽입니다. 한 사람은 현재 육상선수라고 더더욱 기를 죽입니다. 어차피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지만 나름 매일 운동 좀 한다는 40대 아줌마의 숨은 저력을 보여주리라 다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봅니다.

“에휴~ 우린 꼴등만 면허면 겁나 잘 뛴 거유.”

서로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내달린 결과,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무릎이 아픈 맴버가 있는 팀 덕분에 꼴등을 면하고 체면은 섰습니다.

평상시 운동하고는 담을 싸고 살지만 ‘못 달려도 된다’, ‘부담 안 가져도 된다’ 는 등의 기타 유혹에 이끌려 그 드넓은 운동장을 한 바퀴도 아니고 두 바퀴를 돌아야 하는 800미터 달리기를 시도했던 40대 용감한 줌마 지인. 염려했던 대로 한 바퀴도 채 달리지 못하고 중간에 트랙을 벗어나고 맙니다.

“옴마, 발바닥에 뭔 자석이 붙은 거 같으유. 발이 안 떨어져. 언제 달려봤어야쥬. 그래도 내가 이정도일 줄은 몰랐슈.“

그렇게 숨 찬 하루가 저물어 가고 집으로 돌아가 서로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참 좋은 경험 했어요. 덕분에 좋은 추억 간직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동안 운동하고 담 쌓고 살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운동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츄리닝 뿐 아니라 얻은 것이 많네요.”

그렇게 약속이나 한 듯이 온 식구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듭니다. 다음날 아침 심상치 않은 신음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퍼집니다.

“아~~~~! 내 허벅지, 뒷다리, 종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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