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호 칼럼■


 참 아름다운 섬이다.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나는 모습처럼 생긴 지형에서 따 붙여졌다는 이름 백령도(白翎島). 행정구역으로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대청도와 소청도를 거느리고 떠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14번째 큰 섬이었는데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나 8번째 큰 섬이 되었다고 한다.
 백령도에를 가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작년 말에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친구가,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백령도에 간다는 얘기를 듣고, 또 다른 한 친구와 내가 어렵게 끼어든 것이다. 불청객인 우리를 끼워준 친구와 그 동료들의 너그러움에 고마울 뿐이다.
 관광목적이라기 보다 쉽게 가볼 수 없는 절해고도를 찾아가는 기분으로 합류한 것이었다.
 6월 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 총 일행 8명은 인천 연안부두에서 정기여객선인 쾌속선을 타고 4시간 30분여를 헤쳐 가서야 백령도에 닿았다. 우선 마주하는 섬의 크기에 놀랐다.
 사실 백령도라면 인천 앞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주민도 얼마 되지 않는 조그마한 섬인 줄 알았다.
 여객선을 함께 타고와 내린 400여 명은 족히 넘을 만한 관광객들로 잠시 부산하게 붐비던 부두는 관광객을 다 태운 버스들이 각자의 행선지로 떠나가자 평온을 되찾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현직 인천청 간부의 주선으로 마련된 12인승 버스로 백령면 지구대의 근무 비번자 안내를 받아 섬을 둘러보게 되었다.
 먼저 그곳 주둔부대의 OP로 올라갔다. 아무나 무시로 가볼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각별히 마련된 것이다. 관계자의 안내로 그곳의 전망대에서 특별 방문객인 듯한 우리또래의 부부 3쌍과 함께 홍보영상물을 보고 근무 장교로부터 간단한 현황브리핑을 받았다.
 모형지도판과 함께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실제 모습의 백령도 일대는 한반도의 휴전상황과 대치속의 팽팽한 긴장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남과 북이 마주 총을 겨누고 있는 이 엄연한 현실의 상황을.
 1999년 6월 15일의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29일의 제2연평해전을 설명하며, 서해교전이라는 명칭으로 쉬쉬하다 금년부터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하고 기념식도 정부주관행사로 격상시켜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하는 근무장교의 표정에서는 비장감과 함께 후배로서 가지는 아쉬움과 미안함도 느껴졌다. 마치 그동안의 홀대가 자신의 잘못이기라도 하다는 듯.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통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완전한 통일이 달성되기까지는 한 치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지척에 건너다보이는 북한 땅을 보면서, 6.25 전쟁을 연상하면서, 감돌고 있는 긴장을 보면서 문득 얼마 전에 들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신입 육사생도를 대상으로 한,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에 '미국'이라는 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추가 질문에는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고 했다 하니, 교육현장에서의 왜곡과 굴절의 정도가 도를 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오늘날 우리 차세대의 안보의식에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위관시절 근무하던 곳을 30여년만에 다시 찾아왔다는 아까의 그 부부들 중 한 예비역 해군장성은 전작권 환수에 대해 현재의 전력상 정보력 부족으로 우리 군만의 단독작전 수행이 어렵다며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내려다보이는 섬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매립지를 비롯하여 섬에서 한 해 생산되는 쌀의 양만으로 주둔 군인을 포함한 섬 인구 만여 명의 2년치 식량이 된다고 한다. 잠시 긴장과 평온이 함께 나부끼는 들판의 한가로운 곡식들과 해면에서 반사되어 튀어오르는 무심한 햇살을 보며 이 땅의 평화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 내려왔다.
 이런 가운데서도 쇠고기 반대시위의 촛불은 꺼질 줄을 모르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산을 내려와 기암괴석이 홍도보다 뛰어나다는 두무진을 유람선으로 돌아보고, 규조토로 이뤄진 모래판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여 활주로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사곶 천연비행장 그 모래판 위를 버스로 달려도 보았다.
 그리고 파쇄된 규암이 파식작용으로 마모를 거듭하여 이뤄졌다는 콩돌 해안, 심청의 효심을 배워간다는 심청각 등을 휘 둘러보며, 해변에 늘어선 해당화가 못내 안쓰러웠다. 섬치고는 풍요롭기도 하고 또 아름다운 섬이지만, 그 너머로 분단 상황의 첨단에 선 보이지 않는 긴장이 보이는 듯하여.
 1박 2일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며,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 리스트의 상위에 기록하기로 했다. 제발 다시 찾을 때쯤엔 뱃길이 1~2시간 단축되기를 바라며.
 모든 안보교육들 요란떨 것 없이 백령도를 견학시키면 어떨까? 평화까지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백령도는 우리에게 무언의 교훈을 주고 있다. 멀리 외롭게 떨어져 있지만, 호들갑 떨지 않고 제자리에서 묵묵히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만방에 공포하는 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것으로. 촛불 없이도 평화를 잘 지켜내고 있다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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