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은 파렴치하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아동 대상 성폭력은 더욱 그렇다. 아동은 성인에 비해 자기방어 능력이 절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아동학대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학대가 대부분 부모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2014년 사상 처음 1만건을 넘어서는 등 해마다 증가세다. 지난 4월 11일 KBS에서 방영된 시사기획 <창>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는 이러한 친족간 학대 및 성폭행을 다루며 큰 공분을 샀다.
하지만, 그 지영이 사건이 당진에서 발생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2004년  지영이가 6살 때부터 시작된 성학대는 2014년 지방경찰청에 신고가 되어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며 이 세상에 드러났다.

■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
지영이(가명) 사건은 파렴치한 아버지가 주범이었고, 이를 알고도 외면했던 지역사회가 공범이었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허탈감과 절망감마저 주는 끔찍한 사건이다.
지영이 사건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진시에 거주하던 지영이는 6살 때 아버지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그 이후로 지영이게 가해진 성학대는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그 수위가 강해졌다. 그렇게 10년 넘게 친아빠의 성학대에 시달린 지영이는 중학교에 가서 성교육을 받고서야 아빠가 자기를 성폭행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지적 장애 2급인 엄마는 남편의 폭행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다. 사실상 방조자였던 셈이다. 이웃주민들조차 지영이 성 학대 사실을 2009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남의 집안 문제, 그것도 민감한 친족 성폭행이다 보니 괜히 나섰다가 보복만 당한다고 생각하며 쉬쉬했다.
당진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담을 통해 성 학대 사실을 인지했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엄마가 지적 장애인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처벌하게 되면 가족을 부양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 지영이를 집에서 분리하는 문제만 신경 썼다는게 그들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분리조치 과정에서도 도움은 미흡했다. 지영이가 간곳은 치료시설이 아닌 청소년 쉼터 등으로 보내졌다. 이런 식으로 지영이가 거쳐간 시설만 17곳.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른바 '쉼터돌이'가 되면서 지영이의 트라우마는 더 악화됐다.
지영이가 거쳐갔던 시설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다. 지영이는 2012년 청소년쉼터와 성폭력피해상담소에 가서도 여러 차례 성 학대 사실을 얘기했지만 쉼터와 상담소 측도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지영이의 신고를 아빠가 알게 되고 아빠가 가족 해체를 언급하며 지영이를 협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다시 집에 돌아가야 했던 지영이는 아빠의 처벌을 미루는 사이 계속적인 성학대를 당해야 했다.
2014년이 되서야 지영이 이모의 신고로 시작된 경찰 수사로 지영이 아빠는 현재 12년형을 선고받고 2년째 수감 중이다.

■당신이 외면한 사이
아동학대 중 다수를 이루는 가정에서의 학대는 대부분 오랜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특히 성(性)학대 같은 경우 학대의 강도는 점점 커지지만 아이는 학대에 오히려 무뎌지게 되고, 아이의 고립이 심각할수록 학대는 더 심각해진다. 그만큼 '조기 신고'가 중요하다.
하지만, 아동학대가 범죄라는 인식이 낮은 일부 공무원들은 '집안일'에 끼기를 꺼린다. 앞서 지영이 가정의 문제에서도 2012년 '내 자식이 거짓말한 것이다'라는 지영이 아빠의 단순한 진술과 가정해체 등의 이유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렇게 성폭력의 위험에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은 정서 학대다. 결국 제대로 된 상담이나 치료를 하지 못해 아이들을 끝내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아동복지법 상 규정된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신고다. 초중고 교사, 의료인, 구급대원, 유치원·보육시설 종사자, 가정폭력·성폭력 등 관련 상담소 종사자, 학원 운영자·강사 등 아동학대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직종에 있는 이들이 해당된다.
하지만 현실은 본인이 신고의무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알더라도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부족, 신고 이후 신변 위협에 대한 두려움, 신고하지 않았을 때의 제재조항이 없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보니 신고를 대부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15년 당진시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1194건, 성폭력상담건수는 369건에 이르고 있다. 대부분 정서학대, 신체학대, 방임, 성학대 등을 호소하며, 아동들은 정서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지영이 같은 성폭력 아동을 위한 아동보호 전문 시설은 당진시에 전무하다. 아동학대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피해 아동을 부모 등 가해자로부터 신속하게 격리하고, 이후에 필요한 조사와 접근 금지, 친권행사 제한, 정신 상담 등의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하지만, 당진시는 물론 전국적으로 아동학대전문기관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보니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당진시 여성가족과 관계자는 “지영이 사건과 관련해 저희 부서에서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충남도 감사에서 지적된 대로 징계가 있을 것”이라며 “그 당시 사례관리를 담당했던 당사자가 퇴사한 관계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례관리자도 친고죄 문제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되고, 초기에 본인이나 엄마가 적극적으로 신고 또는 협조요청을 하지 않은 것이 사건을 키우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에 갇히다
현재 지영이는 쉼터에서 또래 여학생을 성추행하는가 하면 수 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주 오랫동안 성학대 뿐 아니라 신체 학대, 방임, 정서 학대까지 중복 학대를 아주 심각하게 당한 지영이에게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치료가 필요했지만 그런 치료 기회가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영이 같은 아이들이 가출 청소년 쉼터에 있다는 것이 더더구나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시설관계자는 “지영이 같은 경우 치료에 급급한 게 아니라 아예 시설 찾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싶다”며 “이렇게 ‘쉼터돌이’를 양산하는 우리가 그 만큼 사후관리가 약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영이 사건에 매달렸던 지영이 이모 A씨는 당진경찰서, 당진시청 및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직무유기를 이유로 고소를 준비중이다. 최근 충남도에서도 <지영이에 대한 당진시 관계 공무원의 조치 적정여부 민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 아동학대 신고의무와 절차에 의한 아동보호전문기관 및 수사기관에 대한 신고 미이행으로 관련 공무원에 대한 별도로 조치한다는 계획임을 밝혔다.
지영이 이모 A씨는 “지영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여러 차례 성 학대 사실을 학교와 성폭력 피해 상담소, 지자체에 얘기했고, 이후에도 같은 기관단체에 힘겨운 구조요청을 했지만 가해자인 아빠를 처벌하는 데 모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며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초기에 사태파악을 해서 연계기간에 이관해주었던가 아니면 경찰서에 신고만 제대로 해주었더라도 이렇게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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