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숙 / 당진문화예술학교 수필창작반 수강생, 6남 2녀 8둥이 엄마

신문에서 ‘한국인이 선호하는 여름철 가족 휴양지, 일본’,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이란 기사를 동시에 봤다. 기사를 읽는 내내 어린 나이에 강제 징용으로 하시마 섬에 끌려가 노역에 시달리다 죽어간 소년들의 아우성이 귓전에 맴돌았다.
하시마 섬은 1810년 일본의 한 어부가 최초로 발견했다. 그 당시에는 현재의 3분의 1정도의 면적 밖에 안 되는 작은 여울이었다. 1890년에 10만 엔을 주고 당시 미츠비시 중공업 사장이 이 작은 섬을 매입했다. 섬 둘레에 높이 10미터 안팎의 콘크리트 절벽을 둘렀다. 여섯 차례의 매립공사로 섬의 넓이를 확장했다. 그 모양이 일본 해군의 군함을 닮았다 해서 ‘군함도’라 불린다.
작은 섬을 매립해 막대한 투자를 한 이유는 석탄 때문이다. 가장 많은 석탄을 채굴했던 최전성기는 우리가 일제 강점기로 신음하던 바로 1941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광은 폐광되었다. 패전 후 일본은 하시마 섬 원폭피해를 조사하던 중에 강제 동원한 피해자에 관한 자료를 은닉, 소각했다.
2007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놀라운 문서 하나를 발견했다. 일제 강점 하 강제 동원된 하시마 섬 탄광 노동자 대부분은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다. 험하고 힘든 일에 배치되었던 이들은 언제 수몰될지 모르는 해저 탄광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해야 했다. 대부분 영양실조와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렸다.
일본이 자랑하는 최초의 근대식 아파트는 군함도에 있다. 하시마 섬 탄광 노동자와 관리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은 창문에 널빤지를 달아 덮쳐오는 파도를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탈출을 막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집단 수용소였던 것이다. 몸이 아파 작업에 빠지면 심한 매질을 당해야 했다. 부상자는 무자비하게 총살시키거나 바다에 수장했다. 탈출자는 발각 즉시 사살했다. 간혹,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높은 방파제에서 떨어지거나 거센 파도에 휩쓸려 사망했다. 당시 하시마 섬 근처 나가사키 연안에서는 수많은 한국인 시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원폭 투하 후 탄광징용자들은 방사능에 노출된 나가사키로 끌려가 폐허가 된 현장 뒤처리를 해야 했다. 해방 후에 일부는 귀향길에 올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현해탄에서 배를 침몰시켜 군함도의 추악한 진실을 수장하려 했다.
군함도 곳곳에는 채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노동자들의 한 맺힌 절규가 새겨져 있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가장 깊고 어두운 해저 탄광은 열 살을 갓 넘긴 어린 노동자들의 수용소였다. 햇볕 한 조각 쬐지 못하고 석탄을 캐야 했던 이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공포는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이들의 절규가 아직도 군함도를 맴돌고 있는데 한국인이 선호하는 여름철 가족 휴양지라니.
2007년 8월 일본은 하시마 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계획을 발표한다. 메이지 산업혁명의 유산이오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며 해저탄광의 유적으로 소개한다. 다이쇼 시대로부터 쇼와 시대에 이르는 집합주택의 잔존물로 세계를 향해 홍보하며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기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군함도를 등재하며, 일부 양심 있는 의원회서는 군함도내 강제노역이 있었음을 명시한 세계유산 등재문을 채택했다. 하지만 외무상은 ‘강제노역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 노역에 대한 피해배상 조차 거부하고 있다. 수많은 한국인의 피로 물든 군함도를 통해 얻어질 황금 물고기를 놓칠까봐 그들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자신만 벌거벗은 줄 모르는 임금님처럼 오욕{汚辱}과 수치(羞恥)를 온 세상을 향해 드러내고 있다. 세계를 향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허세와 거짓 앞에서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헤아리며 진실을 외면하는 구경꾼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눈 가리고 귀 막은 이들에게는  ‘임금님은 벌거숭이’ 라는 어린아이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가 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선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삶을 꾸려가는 나무와 같다. 땅이 아무리 광활하다 해도 나 혼자 차지하겠다고 고집한다면 언젠가는 홀로 태풍을 맞을 것이다. 앞과 뒤 양 옆으로 함께 자리 잡고 등을 기댈 때 숲이 될 수 있다. 양보와 협력으로 뿌리를 내려야 그 숲은 아름답다.
문화란 침략과 수탈의 양분으로 이루었든 착취와 폐허 속에 세웠든 인류의 가슴에 들어와 하나의 문명을 이룬다. 세계라는 큰 숲에서 뿌리 내린 각각의 역사는 원치 않아도 서로의 뿌리가 엉켜야 공생 한다. 뿌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역사를 부인한다면 전 세계의 문명과 역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닐까.
군함도 곳곳에는 어린 생명들의 피와 눈물이 스며있다. 일본 정부는 이제라도 양심의 눈을 크게 뜰 일이다. 진실의 입을 열 일이다. 이해득실에 주판알을 튕기는 구경꾼들 역시 어린 영혼들의 울부짖음에 제발 좀 귀 열 일이다.

 

 


 

저작권자 © 당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