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 화 / 편집위원, 민속지리학 박사, 충청남도문화재전문위원, (사)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 다불산 기슭의 나팔봉 전경, 능성구씨 묘소가 있다.
다불산(多佛山)은 면천면 사기소리, 송학리, 죽동리에 걸쳐 있는 높이 321m의 당진군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산 능선에 나팔봉이 있는데 능성구씨 구완서씨와 관련된 팥죽 한 그릇의 은공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다불산(多佛山)은 면천면 사기소리, 송학리, 죽동리에 걸쳐 있는 높이 321m의 당진군에서 2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 산에는 절터가 3곳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보회사(다불산 북서쪽 8부 능선), 미륵암(다불산 서쪽 5부 능선, 사기소리 산29번지)가, 불영사(佛影寺, 다불산 북쪽 산 중턱, 서향, 3단 축대, 기와편과 분청사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앞산인 보령산(죽동리 양지말) 8부 능선에는 계곡의 상단부에 2단의 축대로 조성된 보령사가 있었다. 대략 400여평에 달하는 사역 내에는 주춧돌들이 다량 있고 기와편과 토기편, 청자편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나무고개, 아미산, 다불산을 일러 「나무아미타불」불교관련 유적이 많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이 지역이 몽산, 아미산, 다불산, 웅산, 이배산, 상왕산 등이 어우러져 산세가 굵고 수려해 불도(佛道)를 세울 좋은 터로 여겨졌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 절들은 조선후기 사회가 혼란한 시기 철폐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다불산 능선 아래에 있는 나팔봉이 있다. 이 산은 면천면에서 삼웅리를 지나 사기소리 입구에 있는데 국회의원을 지낸 구을회 씨의 부친 구완서씨와 선조의 산소가 있었고 지금은 대전 당진간 고속도로가 나면서 산소들이 이장되고 나팔봉 9부 능선쯤에 능성구씨 묘소 일부가 남아있다.

이 산을 선산으로 하는 구완서씨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효심이 지극했던 분으로 이름이 난 부자였다. 그가 젊어서 인천을 오가며 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와 관련하여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다불산 전경
옛날에는 주로 물물교환이 이루어졌으므로 당진에서는 쌀이나 잡곡, 나무 등을 배에 싣고 인천에 가서 석유, 광목, 인주, 고무신 등을 바꿔 가지고 왔다. 한 번은 당진에서 상품을 배에 가득 실어 보내고 구완서씨는 육로로 가고 싶어서 천안으로 갔다.

기차를 타려고 천안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한 노인을 보니 수염이 어찌나 많이 났는지 입과 코뿐만 아니라 얼굴을 반이나 덮을 정도였다. 구완서씨는 그 노인을 흥미있게 바라보다가 ‘저 노인은 수염이 걸려 식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묘한 생각을 했다. 구완서씨는 노인에게 “노인장 우리 출출한데 팥죽이나 한 그릇씩 드십시다.” 하고 넌지시 청하였다.

수염 많은 노인의 팥죽 먹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 노인은 “아, 이거 초면에 웬 팥죽을 다 사주십니까?”하며 팥죽을 앞에 놓았다.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망을 하나 꺼내더니 안경을 쓰듯 그 망을 썼다.

기묘하게도 수염은 다 그 망으로 제쳐 지고 입만 남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팥죽을 수염에 묻히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구완서씨는 자기가 장난한 것이 미안도 하고 또한 그 노인이 팥죽 한 그릇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진심으로 한 그릇을 더 사서 대접했다. 시간이 되어 기차를 함께 타고 세상이야기를 하며 서울역까지 와서 작별을 하였다. 구완서씨는 인천에 가서 물건을 한 배 싣고 바닷길로 당진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한 복판에 다다랐을 때 어디선지 해적선이 나타나서 배를 가로막고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한 다음 배에 있는 물건들을 빼앗기 시작했다. 구완서씨는 “이제는 망했구나!”라고 탄식을 하고 있다가 해적을 지휘하고 있는 장도를 보니 낯익은 얼굴이었다.

자세히 보니 천안역에서 자기가 팥죽을 사준 바로 그 노인이었다. 구완서씨가 하도 반가워 인사를 하니 그 노인 역시 깜짝 놀라며 웬일이냐고 했다. 구완서씨가 사정얘기를 하니 그 노인은 부하들에게 구완서씨의 물건은 하나도 손대지 말고 돌려주라고 시켰다.


이렇게 하늘이 낸 부자는 망하지 않는 법이요, 팥죽 한 그릇 적선한 것이 좋은 결과가 된 것은 ‘베풀면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가르침을 지금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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