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선 / 경찰청 수사국장

세상에는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범죄와 이들 범죄를 저지르는 많은 범인들이 있다. 흔히들 한강에 있는 물고기나 들판에서 뛰는 메뚜기를 한꺼번에 다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범죄도 경찰이 일시에 모두 소탕할 수는 없다고들 한다. 경찰력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맞는 말이다.

지난 연말에 수사국장으로 부임하면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겠다고 생각한 몇 가지 범죄가 있다. 첫째, 어르신들에게 가짜 물건을 판매하여 폭리를 취하는 사기범죄, 둘째,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하여 예금을 가로채는 속칭 보이스피싱(전화사기), 셋째, 중소상공인들의 물건 납품대금을 가로채는 거래사기, 마지막으로 조직폭력이 그것이다.

남의 말을 쉽게 믿거나 사회변화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 사회적 약자인 영세 상인이나 업주들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 그런데, 이들 범죄는 피해자들을 커다란 허탈감과 자책감에 휩싸이게 만들고, 사회적인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후유증을 남긴다.  

이들 범죄 중에 보이스피싱을 첫 번째 근절 대상으로 삼았다. 
경찰청에 특별대책팀(수사TF) 설치를 시작으로 금융감독원과의 MOU 체결에 이어 문화관광체육부, 이동통신사 등과 공동대응하기 위해 협업체계를 구축하였다.

심부름센터나 퀵서비스 종업원들이 대포통장을 배달하거나 범행을 통해 얻은 현금을 인출해주는 불법행위에 연루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의 적극적인 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신고보상금을 최고 100만원에서 1억원 까지로 100배나 상향 조정하였다. 파격적인 조치에 힘입어 지난 6개월간 지급된 신고보상금은 180건에 7,555만원으로 신고건수와 보상금 지급액이 지난 해 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전국 지방경찰청 마다 지능범죄수사대를 신설하여 보이스피싱 검거를 전담케 하는 한편, 경찰의 추적수사를 피해 중국, 태국 등 해외에 설치한 콜센터들은 인터폴과 해당국가경찰과의 국제공조수사를 통해 속속 검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범죄를 통해 얻은 현금을 불법으로 환전해주거나 환치기 수법을 통해 해외로 불법 송금하는 행위를 차단하고자 환전소의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일까?
보이스피싱 근절대책은 6개월 여 만에 두드러진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금년 들어 6월 25일까지 전화금융 사기범을 검거한 숫자는 모두 4,396건에 6,160명에 이른다.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하여 검거건수 기준 182%, 검거인원 기준 252%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전화금융사기조직의 하부 범죄자 뿐 아니라 주범까지 꾸준히 검거한 결과, 구속자도 497%나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지난 4월을 기점으로 발생건수는 감소하고, 검거건수는 증가하여 검거건수가 발생건수를 앞지르는 이른바 골든크로스 현상이 나타났다. 검거율이 100%를 넘어선 것이다.
※ 보이스피싱 발생/검거 : 1월 793/482건 → 2월 656/391건 → 3월 1,001/ 633건 → 4월 786/ 898건 → 5월 660/ 958건 → 6.25현재 657/1,030건
범인검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당연히 피해예방과 피해 회복이다.
현재 전국 경찰관서별로 종교단체, 경로당, 학교 등을 통해 다양한 매체와 수단을 통해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나아가 7월말 까지 금감원과 공동으로「보이스피싱 지킴이」사이트 체험관을 구축하여 동영상, 뉴스 모음, 범인들의 목소리와 수법, 웹툰·UCC 등을 게재하고, 문체부와도 전화금융사기 피해예방을 위한「홍보 동영상」을 제작하여 TV를 통해 방영할 예정이다. 이동통신 3사의 휴대폰 가입자 전원에게 피해 방지 요령을 문자메시지로 발송할 예정이다. 피해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68.8%)과 20~30대 젊은층(56.5%)을 겨냥한 맞춤형 홍보에도 나선다.
나아가, 범죄단계별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대책도 보완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에 속았다 하더라도 범인들이 현금 인출 전이라면 112로 신고하면 경찰이 범행에 이용된 은행계좌를  지급정지 할 수 있도록 하였고, 현금 이체금액의 한도도 대폭 축소하였다. 범인들에게 예금을 이체했더라도 30분 이후에나 인출이 가능토록 하는 제도를 금융기관 마다 마련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연말에는 보이스피싱이 확실히 뿌리 뽑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찰의 노력 못지 않게 모든 시민들께서 보이스피싱 예방법을 숙지하시고 사기범들로부터 전화를 받을 경우 적극적으로 신고해주는 협조가 가장 큰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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