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지면 장정리와 송전리의 경계에「가루고개」라는 일명 지네산 고개가 있다.
이 곳에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 변하여 생긴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있다.

이 인 화  (편집위원, 민속지리학 박사, 충청남도문화재전문위원, (사)당진향토문화연구소장)


▲ ‘지네산’은 금계알을 먹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넘봤다는 수천 년 묵은 지네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대호지면 장정리와 송전리의 경계에「가루고개」라는 일명 지네산 고개가 있다. 이곳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있는데 지네와 금계포란(金鷄抱卵)형국과 관련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조선 중엽에 그 산 밑에는 많은 재산을 가진 남씨(南氏)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곡식을 거두어 광속에 첩첩이 쌓아 두었다가 가뭄이 돌아오거나 봄의 춘궁기를 당하여 어렵게 보리 고개를 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어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보통 장자라면 손톱하나 까딱 않고 사람을 부렸지만 그는 천성이 부지런해서 열심히 손수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자는 까닭 없이 신음소리를 내더니 유언도 없이 잠깐 사이에 죽고 말았다. 그가 죽자 그동안 장자로부터 신세를 많이 진 동네 사람들은 슬퍼하며 성대하게 그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장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명당자리에 모셔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전국에서 유명한 지관을 불러다가 묫자리를 보았다.


지관은 산세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집 앞에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명당이 있소. 그런데 앞산 지네산에 수천 년 묵은 지네가 있어서 금계알을 먹으려고 항상 넘보고 있고, 냇물에 사는 우렁이가 땅속을 팔 염려가 걱정이외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이 지관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지관은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고 대답했다.


“우선 냇물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10리 지점부터 소금 3천 가마를 뿌리면 묫자리에는 변함이 없고 그 주변만 변할 것이오.”
아들이 소금 3천 가마를 사서 산 계곡에 있는 물줄기를 따라서 올라가면서 뿌리고 있는데 건너편 지네산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산이 무너지는 듯 한 동물의 울부짖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산이 들썩들썩하더니 마침내 산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그 속에서 집채만 한 큰 지네가 나와서 하늘을 향하여 반듯이 서서 몇 번이고 몸체를 흔들면서 신음하더니 꽝 하고 쓰러졌다.


아들은 지관이 알려준 대로 명당자리를 넘보던 앞산 지네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일꾼과 함께 묫자리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냇물에서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리는데 휘파람소리 같기도 하고 피리소리 같기도 했다.


아들이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보니 며칠 전에 떠나간 지관이 나타나서 그의 소매를 잡으며
“왜 여기 서 있느냐?”
고 하면서 냇물 쪽을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를 끌고 땅에 납작 엎드렸다.

냇물에서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번에는 땅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두려움에 냇물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냇물 속에서 집채만 한 우렁이가 땅위에 솟아 나와서는 몸체를 바깥으로 내밀고 허공을 휘저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두려워하면서도 한편 신기해서 고개를 쳐들어서 쳐다보았다. 지관이 뭘 보느냐고 소리치면서 엎드리라고 말했다.
원래부터 모험심이 강한 아들은 지관의 귀에 대고
“웬 우렁이가 저렇게 큽니까?”


하고 소곤거렸다. 그래도 지관은 아무 대답 없이 엎드리고만 있었다. 울음소리가 신음소리로 변해 가더니 우렁이는 괴성을 지르면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 대호지면 장정리와 송전리의 경계에 있는 ‘가루고개’

주위가 조용해지자 지관은 몸을 털고 일어나서 아들을 바라보면서
“당신 때문에 명당자리가 조금 틀어졌소. 아버지 영구를 모실 묘 앞에서 보지 말라는 것을 왜 봅니까? 잘 보시오. 지네가 죽은 산은 허리가 끊어지고 우렁이가 나온 곳은 큰 둠벙이 생기지 않았소?

그뿐이오 저 쪽 산도 비틀어졌고. 이 산의 방향이 또한 틀어졌소이다. 당신이 우렁이의 죽음만 보지 않았어도 이 산은 틀어지지 않았을 텐데.”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팡이를 들고 사라지면서 중얼거렸다.
“소금 3천 가마를 계속 냇가에 버린 것은 지네와 우렁이가 금계가 알을 품고 있는 명당에 살면서 항상 으르렁 대며 싸우고 지네와 우렁이가 땅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이것들을 죽이기 위해서 뿌린 것인데.

당신의 부주의로 저 산이 틀어져 이 명당이 변해 버려 걱정이오.”
그 후부터 아들은 자기가 잘못한 것이라고 늘 후회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해인가 지관이 다시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얼마 있다가 백마가 나타날 거요. 백마가 나타나서 냇물을 마시고 넘어가는 고개가 있을 거요. 백마는 항시 그 외길을 택할 테니 당신 묫자리는 그 고갯마루에 쓰시오.”


아들은 낮이나 밤이나 시냇가에 백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지관이 떠난 지 50여 년이 흐르도록 시냇가에 백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도 죽은 후 아버지 묘 앞에 묻혀버렸다. 아버지 무덤 앞에 아들 묘를 쓴 그 날 밤에 백마가 나타났다. 백마는 시냇가에 와서 물을 마시고는 길게 한번 울고 동쪽으로 사라졌다.


백마가 나타날 때는 말굽소리만 들릴 뿐 아무리 살펴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훗날 사람들은 백마를 기다렸던 아들이 아니므로 백마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으며, 백마가 넘어 다니던 고갯마루에는 금계포란형 명당이 틀어져서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명당이 생겼다고 했다.


가루고개에 관한 두 번째 전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중엽에 권세와 재산을 많이 가진 남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부친이 별세하자 전국의 유명한 지관을 불러다 묘를 썼는데 그 자리의 형국이 금계포란형으로 대단히 좋은 자리였다 한다.


그런데 이 명당 앞 지네산에는 수천 년 묵은 지네가 금계 알을 먹으려고 항상 넘보고 있던 차 그 묫자리를 잡아준 지관은 그 아들의 대접이 소홀하자 노여워서 이들에게 악운을 주었다 한다.


자리는 명당이지만 다음과 같이 하면 자손이 더욱 발복할 것이라며 묘 앞에 있는 포강에 소금 3천 가마를 풀라 하여 그대로 믿고 실시한 결과 그 속에서 집채만 한 우렁이가 죽어서 나왔다.


그 우렁이는 앞산의 지네가 금계 알을 먹으려고 하는 것을 항상 보호하여 주었는데 그 우렁이가 죽고 난 후 금계와 알까지 모두 지네에게 먹히고 나니 남씨(南氏) 집안은 망해버렸고 지금은 묘비와 묘만이 돌보는 이 없이 남아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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