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시, 12월31일자로 방문간호사 일방 해고 통보
많게는 8년 가까이 일해, 최근까지 무기계약직 전환 약속
노조 “해고 계획 철회하라”

"정규직, 계약직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싶은 겁니다. 차장님, 과장님, 대리님하고…."
요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미생(未生)'이 장안의 화제다. 위 대사는 드라마 주인공 계약직 사원인 ‘장그래’의 대사다.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직장 내 풍경이 현실의 그것을 쏙 빼닮아서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아픈 상황이 최근 TV 브라운관를 뚫고 당진에서 현실이 됐다.

추운 겨울 물거품 된 ‘그 약속’
홀로 사는 노인가구 등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맡고 있는 당진시 보건소의 방문간호사 7명을 포함 당진시보건소 10명의 계약직이 내년부터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방문건강관리 사업’은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의 건강증진과 돌봄을 위해 지난 2007년부터 시행된 것으로, 방문간호사들이 주기적인 방문을 통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건강·가정문제 등을 파악하고 해결한다.
방문간호사 측에 의하면 현재 당진시 방문간호사는 인당 550가구를 관리하며 한달에 한번 거동불편 대상자들에게 투약 및 소독, 소변줄교체, 욕창 소독 등 간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속적인 관리와 주민들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주민들과의 밀접한 관계형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업무이기 때문에 인력을 수시로 교체하거나 인원을 축소한다면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독거노인과 사회취약계층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당진시는 ‘방문건강관리사업’이 통합건강증진사업으로 통합되어 사업이 정부평가에서 빠지자 예산부족을 이유로 이들에게 12월 31일자로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했다.
현재 기간제 방문간호사는 총원 15명으로 지난해 6명이 무기로 전환됐다. 이번에 해고통보를 받은 7명의 방문간호사들은 적게는 4년부터 8년 가까이 일해 온 전문직 간호사들로 11월 말까지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있다가 해고 통보를 받았다. 통합건강증진관리 사업 1명, 영양플러스사업 2명 역시 같은 날 해고통보를 받은 상황.
이에 공공비정규직노조는 지난 12일 정부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공공부문부터 선도하겠다며 상시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지침에도 당진시는 비정규직근로자를 대량 해고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공공비정규직 노동조합은 “당진시는 2016년까지 비정규직 근로자를 100%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을 발표했었다. 이에 2013년 일부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도 했다”며 “새롭게 당선된 당진시장 또한 기간제 무기직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추운 겨울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2013년부터 고용된 건강증진사업 전담 인력은 2년넘게 근무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키기로 2012년 말 결정해 지침을 정하고 지자체 등에 공지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당진시의 해고 통보는 정부의 지침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통합건강증진사업 실시에 따른 기존 고용 해지 및 새로운 근로계약 체결은 불필요’하며 ‘근거 없는 불필요한 해고를 자제하라’는 보건복지부의 지시사항 위반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온데간데 없는 공약 ‘정규직전환’
실제로 당진시는 김홍장 시장 공약사항 실행계획으로 지난 10월 계속사업의 일환인 ‘2014년~2015년 당진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이라는 실행계획을 세우고 확정한 바 있다.
본지가 입수한 문서에 의하면 세부추진 계획으로 총사업비 3억원(국비1억2500만, 도비3700만, 시비1억3800만)을 투입해 올 11~12월을 시험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2015년 1월 전환대상자를 배치해, 고용개선 및 고용안전에 크게 기여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공약사항은 계획이 세워진지 불과 2달도 안돼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해고통보를 받은 한 기간제 간호사는 “11월말까지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준다는 공무원들의 말만 믿고 일해왔다. 11월 14일날 해고예고통지서를 주면서도 절차상 어쩔 수 없이 주는 통지서라며 저희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다 갑자기 12월초에 저희가 하는 일을 줄이고 정리하라고 통보해왔다. 실질적인 일방적 해고나 마찬가지”라며 “현재 충남지역에서는 세종시, 천안시, 아산시, 서천군, 청양군, 금산군, 홍성군보건소에서 방문간호사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를 해고시킨다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나온 이번 해고 통보는 결국 당진시청 비정규직의 대량해고, 무기직 전환 회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노조는 “방문간호사들은 내년에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가능성 속에서 웃는 얼굴로 취약계층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며 “의료복지 일선에 최선을 다해온 방문간호사들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즉각 무기계약직 전환을 지침대로 시행하고 해고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진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당진시 인사팀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무기직 전환은 당진시장의 공약사항이나 무기계약직 전환과 관련하여 방문간호사업의 조직과 인력을 분석한 결과 당진시는 19명으로 천안시 서북구 10명, 동남구 10명, 아산시의 13명,  서산시의  7명 보다 많은 상황”이라며 “업무에 있어서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호사업 여성가족과의 노인돌봄지원사업 등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부분을 정리하고 서비스 대상의 확대보다는 실질적 대상자의 재선정 등 효율적인 사업 추진이 필요한 상황”라고 설명했다.
즉, 업무의 재조정과 인력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방문보건 사업을 현재 무기직으로 근무하는 직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는 등 기간제근로자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는 것. 특히 기준인건비 초과가 기간제의 무기직으로의 전환과 인건비 상승 등에 원인이 있어 최대한의 무기직 전환을 자제해야할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도내 타 지방자치단체와의 인력현황, 세대수, 방문간호 인력 등의 비교와 업무분석을 실시한 결과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진단이 되었다”며 “보건지소 배치 인력을 활용해 업무를 추진해도 무리 없다는 진단에 따라 시장의 공약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기간제 근로자를 줄여 재정운영의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 이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끝으로 이 관계자는 “이번 해고 통보는 개인에게는 일자리를 잃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나 당진시의 조직, 예산 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기간제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2년 이상의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은 공공기관에서조차 경제적인 논리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얼마전 드라마 미생의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눈물이 전파를 탔다. 같이 입사했지만 정규직이 되지 못한 장그래의 눈물과 대형마트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대량해고를 다룬 영화 <카트> 속 노동자들. 그리고 언제 잘릴지 몰라 숨죽여 일하고 있는 당진시 243명의 장그래(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은 제 각각 상황은 다르지만 그 아픔은 같다.
일하고 싶지만, 일하지 못하는 슬픈 ‘장그래’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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